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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4관왕 작가가 물었다 “문학상-공채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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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4관왕 작가가 물었다 “문학상-공채 필요한가요”

손효림 기자 입력 2018-05-10 03:00수정 2018-05-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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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출간 장강명 작가
장강명 작가는 “갈수록 기업, 대학 간 서열이 더 세밀하고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모든 시험이 고시화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43)가 이번에는 ‘시험을 통한 계급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출간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에서 문학상과 공채를 포함한 시험제도가 한국사회의 계급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장 작가를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11년간 기자생활을 한 경험을 발휘해 문학상 심사 현장과 삼성그룹 필기시험장, 사법고시 존치 반대 집회장 등을 누비며 6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유사신분제 사회인 한국을 떠받치는 기둥은 시험”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학상 공모전 4관왕(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에 언론사 시험, 대기업 공채까지 합격했던 그가 아닌가.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왜 시험 같은 공모전을 통과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부조리한 구조에서 제가 현재의 위치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문학상은 문단 권력자가 당선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살벌할 정도로 팽팽하게 설전을 벌이는 모습에 그는 “내가 그 작품을 썼다면 울면서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학상용 작품’이 따로 있다는 것도 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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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한국사회의 시험제도는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과거제도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나이는 평균 36.4세로, 10대 중반부터 공부했다고 치면 20여 년 걸린 셈입니다. 60, 70대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도 있었고요.”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최종 합격자는 한 해 30여 명이었다. 하지만 선발된 이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국제 정세에 취약했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한국과 베트남이 근대화에 뒤처지고 과거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은 일본이 승승장구한 역사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제도를 둘러싼 풍경은 2011년부터 5년간 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 127만여 명에 합격자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색종이를 접어 오린 뒤 펼치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유추하는 대기업의 필기시험 문제, ‘쌈’이 바늘 몇 개인지 묻는 공무원 시험문제처럼 ‘선발’을 위한 시험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사법고시생이 로스쿨생을 바퀴벌레에 빗대 ‘로퀴벌레’라 부르고, 로스쿨생은 사법고시생을 ‘사시충’이라 비하하는 것도 시험을 두고 벌어지는 살벌한 현실이다.

“시험이 유능한 사람을 못 뽑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합격자는 영원히 합격자로, 불합격자는 영원히 불합격자로 구분 지으며 신분 격차를 너무 크게 가른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는 문학상은 필요하지만 현 제도로는 튀는 작가나, 심사위원은 이해가 안 돼도 독자들이 환호하는 작가를 뽑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발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조앤 K 롤링처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는 현재 범죄 관련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비인간적인 경제구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그리는 소설집 ‘산 자들’(가제)에 담을 단편도 쓰고 있다.

“소설만큼 제게 강렬한 짜릿함을 주는 건 없어요. 소설과 르포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장강명 작가#당선 합격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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