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남북 단일팀은 공정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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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3일 2018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스웨덴 할름스타드 아레나. 여자 단체전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던 한국과 북한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깜짝 남북 단일팀의 탄생이었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27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된 탁구 단일팀은 대회 내내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KOREA’란 이름을 내건 단일팀은 이튿날 일본과의 4강전에서 패했다. 하지만 엔트리에 포함된 9명(한국 5명, 북한 4명)은 모두 동메달을 받았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나부끼는 가운데 시상식에 섞여 선 선수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한국과 북한은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도 단일팀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경기 남북 단일팀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 유일한 걸림돌은 엔트리 확대 여부다. 이미 대표 선발을 끝낸 한국 선수들의 피해가 없으려면 엔트리가 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3일 스위스 로잔으로 날아가 셰이크 아흐마드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과 단일팀을 추진 중인 몇몇 종목의 엔트리 확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한국에만 엔트리를 늘려주는 게 과연 공정하냐는 것이다.

공정성은 스포츠의 기본 가치다. 동일한 조건에서 정정당당히 우열을 겨루는 게 스포츠다. 우리가 5명이면 상대도 5명이고, 우리가 10명이면 상대로 10명이어야 한다. ‘페어플레이’는 동네 조기축구나 사회인 야구에서도 지켜진다.

엔트리 확대를 통한 남북 단일팀 결성은 2월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이뤄진 적이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엔트리는 23명이었지만 단일팀은 35명(한국 23명, 북한 12명)으로 구성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아이스하키협회(IIHF)가 적극 지원했기에 가능했다. 경기당 출전은 규정대로 22명만 했지만 상대팀인 스위스와 일본 등에서는 “불공정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5전 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한국이 승승장구해 메달이라도 땄다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었다. 상대가 메달의 정당성을 걸고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탁구 단일팀도 4강에서 일본을 이겼다면 일본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을까. 사전에 단일팀을 양해했다곤 해도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탁구 단일팀은 중국을 넘어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단체전 엔트리는 상대 팀들과 똑같이 5명이었다. 그해 세계청소년축구 8강 신화를 일군 축구 남북 단일팀 역시 다른 나라와 같이 18명(한국 10명, 북한 8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했다. 그랬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엔트리 확대는 일종의 특혜다. 그것을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와 같은 국제대회에서 당연하다시피 요구하는 것은 전혀 스포츠적이지 않다. 이왕 단일팀을 만들기로 했다면 시간이 더 걸리고, 고통이 따르더라도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단일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남북 단일팀#엔트리#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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