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희망퇴직 규제’ 한국이 유일… 선진국 ‘자발적 사직’ 간주 간섭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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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규제하려는 ‘찍퇴’ ‘강퇴’… 근로기준법으로도 막을 수 있어
희망퇴직 갈등 빚는 현대重에 고용부 “법 절차 맞게 하라” 공문


“이쯤하면 기업이 인력에 대한 아무런 자율성도 갖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2일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본보 2일자 A1, 6면 참조)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장년 근로 보호보다 노조 기득권 보호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정부의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희망퇴직 규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법의 모체(母體)인 독일과 일본 노동법은 해고를 엄격히 규제한다. 그렇다고 희망퇴직의 요건과 절차까지 국가가 간섭하지는 않는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서로 합의해 근로계약관계(고용관계)를 종료하는 희망퇴직은 일종의 ‘자발적 사직’이어서 노동법이 규율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고용유연성이 높은 미국은 해고 자유의 원칙도 철저하다. 최대 두 달 전에만 근로자에게 통보하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

희망퇴직은 한국 특유의 제도다. 경영계 관계자는 “일반해고나 정리해고가 까다롭다 보니 기업들이 우회적 수단으로 희망퇴직이란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일본은 저(低)성과자 해고(일반해고)부터 징계해고, 정리해고가 모두 가능하고 실업급여와 연금 등 사회안전망이 촘촘해 굳이 희망퇴직을 실시할 이유가 없다.

최근 들어 한국과 비슷한 희망퇴직이 활성화된 나라는 프랑스다. 과거 프랑스는 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였다. 희망퇴직을 실시하려면 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주도로 지난해 9월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이 요건을 삭제했다. 그러자 올해 1월 프랑스 최대 자동차업체인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이 1300명을 희망퇴직으로 감원한 것을 시작으로 주요 대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일반해고(23조)와 정리해고(24조)의 요건과 절차를 규정한 국내 근로기준법으로도 희망퇴직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규제하려는 ‘찍퇴’(찍어서 퇴직)나 ‘강퇴’(강제로 퇴직) 형태의 희망퇴직은 사실상 부당해고인 만큼 근로기준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부 울산지청은 최근 희망퇴직을 두고 노사 갈등을 빚는 현대중공업에 “법과 절차에 맞게 희망퇴직을 실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도 무분별한 희망퇴직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고용부 스스로 밝힌 꼴”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기업#희망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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