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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영변 폭파쇼’ 이후 합의파기 거듭… 숨겨진 시설 포함 ‘완전한 검증’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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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영변 폭파쇼’ 이후 합의파기 거듭… 숨겨진 시설 포함 ‘완전한 검증’ 관건

황인찬 기자 입력 2018-04-30 03:00수정 2018-04-3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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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핵화 선언]IAEA 사찰때도 제한적 검증
2010년 이후 핵시설 공개 안돼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한미 언론을 초청해 녹화 중계한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 북한은 당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절차에 들어가자 냉각탑 폭파 장면을 공개하며 화답했지만 이후에도 핵 개발을 지속했다. 동아일보DB
2008년 6월 27일 오후 5시 5분 북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1∼2초 만에 폭파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 핵실험의 상징물로 여겨졌던 시설의 파괴는 녹화중계로 전 세계에 타전되며 북핵 폐기에 대한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추가 검증 시기와 방법을 놓고 그해 12월 6자 회담이 결렬되면서 북핵 검증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지고 경제, 군사적 위협에 놓일 때마다 핵 시설에 대한 검증 카드를 꺼내며 급한 불을 꺼 왔다. 김정은이 북핵의 원천인 풍계리 핵실험장을 다음 달 폐쇄하고 현장을 공개하기로 했지만 ‘완전한 검증’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이 될 듯하다.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면 협상에 악영향을 주는 ‘딜 브레이커’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북한은 1974년 5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을 시작으로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1992년 1월 IAEA와 전면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듯했다. 그해 5월 처음으로 IAEA에 ‘5MW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1회 재처리해 추출한 약 100g의 플루토늄’을 신고했다. 그러나 IAEA가 이듬해 2월까지 6차례 사찰을 통해 신고량과 검증 결과가 다른 것을 파악했다. 이에 핵폐기물 저장시설로 추정되는 2개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군사시설이라며 거부했다.

이후 북한의 1993년 6월 NPT 탈퇴 의사 통보로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고, 이듬해 6월 IAEA 탈퇴 통보로 정점으로 치달았다. 북한의 핵시설 동결과 미국 등의 경수로·중유 제공을 골자로 하는 1994년 10월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가 채택되며 위기를 넘긴 듯했다. 그러나 1998년 북한 금창리 지하에서 핵시설로 추정되는 터널이 발견됐고, 대포동 1호가 발사되며 합의에 금이 갔다. 결국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보유 발표로 ‘2차 북핵 위기’가 초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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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결렬된 6자 회담도 결국 북핵 검증을 둘러싼 이견이 원인이었다. 북한의 핵시설은 2010년 미국 원자력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방북 이후 공개된 적이 없다. 이후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까지 하며 고도화를 이어갔다. 그만큼 검증할 수준은 높아지고 시설도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은 북핵 관련 합의와 번복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찰과 관련해 큰 걸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을 북이 수용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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