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 공룡들 ‘잔인한 4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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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트럼프 공격에 주가급락
페북 정보유출 파문 확산 휘청
테슬라 車사고-신용강등 겹악재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1일 트위터에 뜬금없는 사진을 올렸다. 머스크가 노숙자처럼 차량 문에 기댄 채 종이박스를 덮고 있는 사진이었다. 박스에는 ‘파산했다(bankrupt)’의 오자인 듯한 ‘bankwupt’란 글자가 묘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트위터에 “부활절 계란을 대량 판매하는 등 자금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파산했다”고 적었다가 곧 “이는 실제 발표할 성명은 아니다. 새로운 달을 축하한다”고 말을 바꿨다. 만우절을 기념한 농담임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가벼운 농담은 최근 테슬라의 어려움을 경고하는 보고서들과는 상반된다”고 냉소했다. 테슬라가 실제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어서다. 최근 모델3 대량 생산이 지연돼 현금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지난주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테슬라의 신용등급을 B2에서 B3로 한 계단 낮췄다.

테슬라의 위기는 아직까진 농담 소재가 될 정도이지만 실리콘밸리의 다른 정보기술(IT) 공룡기업들은 심각하다. 페이스북은 최근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에 고객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세계적 지탄을 받고 있다. 아마존은 3일에도 어김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우체국에 거대한 비용을 부담시킨다”는 ‘트윗 공격’을 받았다. 지난달 29일부터 벌써 네 번째 공격이다. 이렇다 보니 페이스북, 테슬라, 아마존 모두 최근 5일간 주가가 휘청거렸다.

○ ‘데이터 제국’, 직원 사찰 의혹

외신들은 ‘혁신의 아이콘’이던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최근 위기에 처한 원인을 실리콘밸리 특유의 문화에서 찾았다. 기업들이 혁신을 급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윤리의식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분석이다. 페이스북의 ‘데이터 스캔들’도 개인정보 보호를 ‘인권’ 문제로 여기고 보호하려는 윤리의식이 부족한 탓으로 보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문제는 최근 직원 사찰 의혹으로도 번졌다.

페이스북 직원 존 에번스(가명) 씨는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의 비윤리적인 이면을 폭로했다. 그는 지난해 갑자기 ‘승진 후보’란 희소식과 함께 임원 호출을 받았다. 임원은 한동안 그를 칭찬하더니 한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에는 페이스북의 비밀 ‘쥐잡기’팀 요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에번스 씨가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며 에번스 씨가 갖고 있던 스마트폰 캡처 파일, 그간 클릭했던 홈페이지 주소 등을 내밀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에번스 씨가 입사 전에 썼던 메시지 내용까지 확보돼 있었다는 사실. 그는 가디언에 “이 회사가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지 공포스러웠다. 페이스북에 입사해 회사의 부정적인 면을 알게 되면서 즉각 저커버그의 ‘비밀경찰’과 마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구글 직원들 사이에서도 회사가 직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이 나왔다. 가디언에 따르면 구글 직원들은 ‘구글 플러스’의 내부용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이를 통해 잡다한 사생활 대화도 주고받는다. 구글 출신 엔지니어 제임스 대모어 씨는 회사의 민감한 정보를 폭로한 뒤 회사로부터 지속적으로 감시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모든 앱이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업데이트됐고 구글 계정에 재가입하도록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말했다.

IT 기업들이 데이터를 쥐고 휘두르면서도 보안 문제에는 둔감해, 핀테크 산업이 해킹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IT가 기반이 된 핀테크 기업은 급속한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제2의 경제위기는 월가가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성공에 도취돼 도그마 형성

NYT는 지난달 4일 ‘실리콘밸리 시대는 끝났다고 실리콘밸리가 말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미덕이던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자만하는 기업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도그마(신조)를 형성하며, 정치권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트럼프를 민간로켓에 태워 우주로 날려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된 ‘트윗 공격’은 베이조스 CEO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마이클 모리츠도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역사에 사로잡혀, 변화에 느려지고 자만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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