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5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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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큰일 터지면… 당신만 쳐다봅니다

《 “한반도를 위한 대화가 결실을 보길 간절히 기원하고, 현재 진행 중인 대화가 지역 화해와 평화를 진전시키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부활절 미사를 집전한 뒤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발표한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를 향해)’ 메시지에서 한반도 상황을 별도로 언급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인 대화가 성공을 거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교황의 소망이 담겨 있다. 》
 
교황은 부활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성금요일’의 밤에는 로마 콜로세움에 2만여 명의 순례자가 모인 가운데 예수의 수난을 재현하는 ‘십자가의 길’ 행사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는 “젊은이, 병자, 노인들을 소외시키는 이기주의가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지난달 25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종려주일 미사에서는 “나이든 이들이 부패하거나 침묵할지라도, 또 그들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청년들은 외쳐야 한다”고 전 세계 청년들을 독려했다. 전날 미국 전역 800여 개 도시에서 80만 명이 들불처럼 일어난 총기 규제 시위를 지지한 발언이었다.

지난달 13일, 즉위 5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당시부터 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 첫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화제가 됐다. 5년이 지나면서 국제사회는 국제 이슈만 터지면 교황의 입을 쳐다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어느 교황보다 ‘세속적’인 일에 큰 관심을 보이며 12억 가톨릭 교인들의 영적 분야를 담당하는 종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넘어 국제사회의 최고 지도자, 때로는 과격한 사회 활동가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가 가장 강한 톤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슈는 빈곤과 난민 문제다. 즉위 첫해 발표한 핵심 교서 ‘복음의 기쁨’에서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을 긴 분량을 할애해 강조한 교황은 자본주의에 매우 비판적이다. 2016년 11월 대중운동세계회의 연설에서는 “돈의 통치란 끝이 보이지 않는 하향 나선식 폭력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가치와 연대’보다는 ‘돈의 논리’를 앞세워 자국 이익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상극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가 멕시코에 장벽을 세워 이민자를 막겠다고 하자 “다리가 아닌 장벽을 세우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관심을 두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이민 가정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공식 방문지는 북아프리카의 유럽행 난민의 최전선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이었다. 교황은 이민, 난민 문제를 관장하는 부서에 두 명의 정무차관을 임명하고 교황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국제사회에 21가지 난민 조치를 직접 요청했다. 특별비자를 발급해 한시적으로 모든 난민을 받아주고, 난민에게 이동과 일할 자유를 주고, 모든 아이들에게 출생 시 국적을 부여하고, 건강-연금 시스템을 같이 적용시켜 주는 등 일반 국가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도 상당히 있었다.

그러다보니 난민 수용에 적대적인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 동맹당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교황이 수용하라는 난민은 모두 바티칸으로 데려가라”고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총선 결과 살비니가 이끄는 우파 동맹이 1위를 차지하자 바티칸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사회, 원하는 상황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황청은 어떤 조건에서라도 할 일을 해야 한다”며 결과에 우려를 표시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 조언을 맡았던 미국의 극우 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이탈리아 총선 이후 “이번 투표는 난민에게 관대한 교황에 대한 거부감의 결과”라며 “교황은 스스로를 급진적인 혁명가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고 깎아내렸다. 교황은 “유럽 포퓰리즘의 전형은 1933년 독일”이라며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훔치지 않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뒤 국민을 파멸시켰다”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국제사회에 강력한 반향을 일으키는 건 교황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존경심이다. 그는 여전히 전 세계 80% 안팎의 지지율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사심 없는 겸손한 리더십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사제와 함께 머무르는 그는 지난달 29일 부활을 앞둔 성목요일을 맞아 로마 제리나첼리 구치소를 찾아가 재소자 12명의 발을 씻겨주고 발에 입을 맞췄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겨준 것을 기념한 이 의식에는 이슬람 신자, 불교 신자, 아프리카 이민자 재소자들도 함께했다. 교황은 사도좌에 오른 첫해부터 매년 재소자, 병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올 1월 남미 순방을 포함해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지 않는 엄격함을 보였다. 교황으로서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첫 방문, 러시아정교회 수장과 만나 천 년 만의 화해를 이루며 종교 통합에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폭넓은 사회 행보에 대한 우려와 반감도 함께 커지는 중이다. 교황 즉위 5년을 맞아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하락세인데 이는 보수층의 이탈과 이어진다. 3월 발표한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 공화당 성향의 가톨릭교인 중 교황이 너무 진보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14년 23%에서 4년 만에 55%로 급증했다. 이들의 교황에 대한 지지율은 90%에서 79%로 떨어졌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우파 공화당 지지층에서 교황의 지지율은 3년 만에 17%포인트 하락했다. 교회 내부에서도 교황이 지나치게 세속적이며,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며 말이 직설적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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