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빛나는 연구 뒤엔 우리가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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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동-식물 관리 전문가들
‘애기장대’ 등 모델 관리만 20여년… 건강 상태 따라 연구 결과 달라져
스트레스 안 받도록 심혈 기울여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 모델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해주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서경희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연구원과 이인철 선임기술원은 노화 실험에 쓰이는 애기장대를 관리한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 모델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해주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서경희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연구원과 이인철 선임기술원은 노화 실험에 쓰이는 애기장대를 관리한다.
“멀리서 오셨는데 안타깝지만 반려견을 키우신다면 저희 연구단 동물실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생물을 활용한 연구에 쓰이는 실험 모델 동물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을 만나고 해당 모델을 직접 보기 위해 16일 대전 KAIST에 입주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을 방문했다. 그러나 동물실 출입구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연구단의 구준서 책임기술원은 “외부 바이러스나 세균 전염을 막기 위해 2주간 다른 동물실험실을 방문했거나 동물과 접촉한 일이 있다면 동물실 출입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19일 애기장대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DGIST)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연구 영역이 달라 쥐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바깥에서 신던 신발을 갈아 신어야 했다. 서경희 연구원은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진딧물 같은 해충이 묻어올 수 있기 때문에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델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해 연구를 하는 것과 모델을 키우고 관리하는 일은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이다. 소규모 연구실에서는 연구자가 직접 관리하지만 규모가 큰 연구단에서는 전문 관리 인력을 두고 연구자를 지원한다.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과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이 대표적이다. 구 책임기술원과 서 연구원은 20년 가까이 각각 마우스와 애기장대 관리 외길을 걸었다. 구 책임기술원은 1999년부터 실험용 생쥐(마우스)를, 서 연구원은 1998년부터 애기장대를 각각 다뤘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 모델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해주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이윤성 유전체항상성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송혜인 연구원과 실험에 쓰는 제브라피시를 직접 관리한다(위 사진). 김찬기(흰 가운), 구준서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실험용 생쥐를 건강하게 키워낸다(아래 사진).
연구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필요한 실험 모델을 최상의 상태로 준비해주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이윤성 유전체항상성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송혜인 연구원과 실험에 쓰는 제브라피시를 직접 관리한다(위 사진). 김찬기(흰 가운), 구준서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실험용 생쥐를 건강하게 키워낸다(아래 사진).

실험 모델로 사용하는 동물이나 식물은 연구의 신뢰도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살아있기 때문에 건강 상태나 스트레스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기를 타고 미생물이 전염될 수도 있어 필터로 환기도 직접 제어해야 한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데도 실험 모델은 계절에 따라 상태가 미묘하게 바뀔 정도로 예민하다. 물고기 실험모델인 제브라피시를 연구하는 이윤성 유전체항상성연구단(UNIST) 책임연구원은 “분명 모든 조건을 다 통제하는데도 사람이 동물실에 드나들 때 미묘하게 바뀌는 공기 때문인지 여름과 겨울 상태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토록 예민한 실험 모델이 관리자나 장소에 따라 상태가 달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서 연구원은 연구단이 포스텍에서 DGIST로 이사 왔을 때 일어났던 사건을 예로 들었다. 2012년 DGIST로 이사 온 뒤 포스텍에 있을 때와 똑같이 키웠는데도 애기장대가 잘 자라지 않았다. 연구단이 이사하기까지 건물을 2년 가까이 쓰지 않아 상수관 내부에 녹이 슨 것이 원인이었다. 당연히 연구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서 연구원은 “당시에 이미 10년 넘게 애기장대를 키웠기 때문에 바로 물에 문제가 있다고 직감했다”며 “물을 끌어오는 하천 수질 검사를 맡기고, 물탱크도 청소하는 등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에게 건강하고 상태가 좋은 실험 모델을 제공하기 위해 때로는 연구자와 다투기도 한다. 김찬기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외부에서 실험했던 마우스를 동물실로 가져오고 싶어 하는 연구자와 갈등이 생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구 책임기술원은 “각 동물실이 최상의 상태로 유지되려면 외부 동물 유입이 없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냉동 배아 상태로 이동시킨 뒤 해당 실험실의 대리모 쥐를 이용해 새로 키우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구 책임기술원의 원칙에 따라 동물실을 관리한 뒤 마우스 상태가 좋아지자 연구자들도 협조적으로 바뀌었다.

연구자들의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고 있지만 이들은 “실험 모델 지원 업무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업무가 가장 잘 진행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갖고 있는 노하우를 이용해 더 큰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서 연구원은 “실험 모델을 키우는 인력이 늘어나면 이를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소크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이 연구소는 각 저널에 발표되는 각종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구입한 뒤, 이를 키워 전 세계에 애기장대 종자를 판매한다. 서 연구원은 “소크연구소에서 구입한 씨앗을 직접 키워보면 발아율도 낮고 상태가 썩 좋지 않다”며 “20년 동안 애기장대를 키우며 쌓은 노하우를 나누면 질이 좋은 종자를 만들어 종자은행처럼 판매하는 산업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대구·울산=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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