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신용석]대피소 코 고는 소리 이제 그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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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올해 지리산은 국립공원 지정 51년째를 맞이했다. 국립공원 지정 목적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데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즐겁고 안전한 여가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다. 한정된 자원을 잘 보전하고, 이용도 많이 하는 것은 동시에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보전을 잘하려면 이용을 제한해야 하고, 이용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보전 수준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연 50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립공원 탐방객은 ‘최상의 보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립공원제도를 도입했지만 이후에도 심각한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이 이어져 정부는 1987년 전문적인 공원관리를 담당할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설립했다. 30년 전 산은 마치 음식점처럼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는 취사장이었고 음식물 찌꺼기 등이 쌓인 쓰레기장이었다. 사람들은 수백 년 된 나무를 잘라 불을 때고 멸종위기식물들을 걷어치우고 야영장을 만들었다. 지속적인 계도와 강력한 단속을 실시한 결과 이제 불법적인 취사·야영은 거의 근절되었다. 야간 산행과 흡연 금지도 시행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착단계에 있다.

산은 깨끗해졌지만 정상에 올라 술을 마시는 ‘정상주 파티’ 등 음주문화는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산에서는 땀을 많이 흘려 몸이 그만한 수분 흡수를 원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술을 더 마신다. 그래서 과음한 뒤 고성과 거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시비가 붙어 산 정상에서 소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특히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밤을 보내는 대피소에서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떠안긴다. 대피소에서 가장 큰 곤란은 ‘코 고는 소리’인데, 음주는 이 소음을 증폭시킨다.

더 큰 문제는 안전사고다. 누구나 산에 오르느라 체력을 소진해 내려가면서 발이 풀려 균형을 맞추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음주까지 하면 집중력이 약해지고 근육이 이완돼 허리, 무릎, 발목이 꺾이거나 넘어지는 등 안전사고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고혈압, 심장병, 당뇨 등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음주 산행을 하면 생명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구조 요청을 받고 도착했을 때 술 냄새가 확 풍긴다면 구조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같은 시간 발생한 다른 긴급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 13일부터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 자연공원의 주요 정상부와 지정 탐방로, 대피소 등에서는 음주가 금지된다. 자연공원에 갈 때는 음주가 금지되는 장소를 미리 홈페이지나 공원사무소에 문의해야겠다. 단속을 당하면 처음 위반할 경우 5만 원, 두 번 이상 위반 시에는 10만 원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9월 중순까지는 계도기간이지만, 이제부터는 산행 준비물에서 아예 술은 빼는 습관을 갖기를 바란다. 술은 산행을 다 마친 뒤 하산해서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하산주는 대부분 지역 음식점에서 마셔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지리산#국립공원#음주#안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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