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터틀 “시를 쓰듯 미술로 세상을 이어붙이는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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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아트 선구자 리처드 터틀
‘나무에 대한…’ 국내 첫 개인전

7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난 리처드 터틀. 그는 “한국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가져 무척 기쁘다”며 “과거 경주를 방문했을 때 깊이 있는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7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난 리처드 터틀. 그는 “한국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가져 무척 기쁘다”며 “과거 경주를 방문했을 때 깊이 있는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을 떠올리면 ‘투명한 노랑(transparent yellow)’이 생각납니다. 왜냐고요? 글쎄, 누군가를 바라보면 특유의 아우라가 보이듯 자연스러운 거라 설명하기 어렵네요. 중국 하면 ‘옅은 파랑(pale blue)’이 연상되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 양반, 심오하지만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 거라는 걸. 전시장 작품 아래 죽 이어진 노란 띠.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의 색’을 반영한 거란다. 대가들의 예술관은 참 가늠이 어렵다.

7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난 리처드 터틀 작가(77)는 ‘현대의 화가 열전’ 같은 목록에서 꼭 등장하는 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선구자라 불리는데 “섬세한 물질성과 형태, 빛, 질감의 미묘한 표현이 특징”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여튼 대단한 미술가인데, 그는 이를 ‘시(poetry)’라고 표현했다.

“21세 때부터 매일 시를 씁니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시를 짓죠. 시란 세상을 구성하는 조각들을 언어로 이어붙이는 작업입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 눈에 보이건 안 보이건, 때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조합하는 겁니다. 인간의 오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의식과 감정을 발현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과 같죠.”

그런 그가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뵈는 시(개인전)는 ‘나무에 대한 생각들’이다. 총 23점에 이르는 작품은 자그마한 액자 속에 접착제로 붙인 알록달록한 종이 조각들을 쭉 전시했다. 얼핏 유치원생의 마구잡이 놀이 같아 보이기도…. 침을 꿀꺽 삼키고 설명을 요청했다.

“세상의 모든 재료는 쓰레기처럼 취급하면 쓰레기로 반응합니다. 미학적으로 접근하면 아름다운 재료로 표현되죠. 자세히 보면, 각기 다른 조명 아래 서로 다른 공간과 운율이 느껴질 거예요. 영감(inspiration)에서 영혼(soul)을 끄집어내는 순간을 캐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이런 얘기 몰라도 되는 거 아닐까. 잠깐 눈을 거슴츠레 뜨고 혼자만의 조명을 만들어봤다. 창가로 스며드는 빛, 그걸 타고 어른거리는 액자. 어쩌면 이게 작가가 그렇게 강조한 모순(contradiction)일지도. 맘속엔 이미 아름다움이 저장됐으니. 5월 12일까지. 070-7707-8787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리처드 터틀#미니멀아트#개인전#미술#페이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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