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맞서 韓美 작전” 이승만이 김구에 보낸 비밀편지 첫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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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동아옥션’ 14일 개최, 희귀자료 등 260여점 출품

김소월 작품으로 알려진 ‘못니저’ 원저자 김억 밝혀준 편지 나와
손기정 우승기념 녹음 LP레코드, “크게 읽어” 다그치는 목소리 담겨

1940년 우남 이승만이 백범 김구에게 보낸 편지(왼쪽 사진). 제1회 동아옥션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우남은 “한미 공조로 일본에 군사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환기 화백이 표지 그림을 그린 단행본들(가운데)과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녹음한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기념 LP레코드판도 함께 출품됐다. 동아옥션 제공


“백범 인형께. 지금 미국은 은밀한 준비에 열심인데… 만일 전쟁이 벌어지면 해상에서의 충돌이 먼저 있게 될 것이니 이때 제 도움을 바란다고 합니다.”

1940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에 머물던 우남 이승만(1875∼1965)은 중국 치장(D江)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1876∼1949)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한 개인 소장자가 제1회 동아옥션에 처음으로 공개한 이 편지에는 조국 독립을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력한 두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행동으로 할 일은 군함, 병영, 관공서, 군수공장 등을 파괴, 방화하는 일, 사보타주, 비행기를 포격하고 시위할 것, 또는 군인 수백 수천으로 습격 항전할 것 등을 빨리 고민해보시고, 상세한 절차를 보여주십시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 우남은 백범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미국과 일본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으니 한미 공조 군사 작전을 통해 일제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남은 외교독립론을 중시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 편지에는 오히려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학계에선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는 “자유롭게 흘려 써내려가는 독특한 필체와 우남이 미국에 머무를 당시 주로 사용하던 짙은 미색 종이 등을 볼 때 그가 쓴 편지들과 일치한다”며 “외교독립론과 함께 전시에는 철저한 무장투쟁론을 강조한 우남의 사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사 18층에서 14일 열리는 ‘제1회 동아옥션’에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미술품 116점을 포함해 고문서 61점, 양장고서 18점, 도자기 등 260여 점이 출품된다.

“못닛도록 사모차게 생각이 나거든, 야속하나마 그런데로 살으십시구려.”

1923년 3월 23일 안서 김억(1896∼?)이 친구였던 유봉영(1897∼1985)에게 보낸 편지다. 김소월(1902∼1934)이 1923년 5월 ‘개벽’ 35호에 발표한 시 ‘못니저’와 거의 똑같은 내용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김소월을 발굴해 문단에 데뷔시킨 김억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년)를 내는 등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박대헌 삼례 책박물관장은 “김소월의 작품으로 알려진 ‘못니저’의 원저자가 실은 김억이었음을 알려주는 의미 깊은 사료”라고 평가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1912∼2002)는 일본 대표로 뛰었다는 사실에, 시상식에서 머리를 푹 숙인 채 기뻐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을 일본이 아니었다. 조선총독부는 그해 9월 손 선수에게 우승 소감을 강제로 녹음시킨다.

“무의식중에 죽을힘을 다하여 더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

이번에 출품된 ‘손기정 우승 기념 녹음’ LP레코드에는 이 내용이 담겨 있다. ‘일장기’, ‘일본 국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목소리가 작아지는 손 선수의 슬픔이 전해져 온다. 손 선수가 말하기 전, “크게 읽어”라며 강압적으로 재촉하는 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당시 녹음기술로는 음원을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가 직접 표지 그림을 그린 단행본 43권과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경매에 나온 물품은 7일부터 14일까지 충정로 동아일보사 18층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www.dauction.kr. 02-362-5110



▼ 조선왕실 12폭 거대 병풍 국내경매 처음 나와 ▼


역사적 가치 큰 조선 문화재 다수
“내 나이 많아 정절 강요 못할 노릇” 정약용, 본처-첩 갈등 고민 편지
조선후기 유행 12폭 수렵도 공개…절기별 일출-일몰처 과학 작품도


우리나라 경매에서 처음 공개되는 조선 왕실의 12폭짜리 병풍 ‘백동자도 12곡병’. 동아옥션 제공
우리나라 경매에서 처음 공개되는 조선 왕실의 12폭짜리 병풍 ‘백동자도 12곡병’. 동아옥션 제공
12폭의 거대한 병풍 안에 동자(童子)들이 부귀한 저택을 배경으로 노닐고 있다. 제기차기와 연날리기, 닭싸움을 하는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14일 열리는 제1회 동아옥션에 출품된 ‘백동자도 12곡병’의 모습이다. 지금껏 6∼10폭의 병풍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12폭의 거대한 병풍이 우리나라 경매에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시대 왕실 혼례에 사용된 것으로 주로 세자의 침소에 배치됐다. 화려한 장식성과 고급 비단에 채색된 것으로 볼 때 조선 왕실 화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번 동아옥션에서는 출품된 다양한 고문서와 미술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고풍스러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쓴 원본 편지도 눈에 띈다.

“내 나이가 이처럼 많으니 남에게 정절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1820년 8월 3일 다산이 쓴 편지에는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당시 다산은 전남 강진에서의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경기 남양주로 귀향했다. 그가 강진에 있을 때 만난 첩과 그 사이에 낳은 딸로 인해 본처와 갈등을 겪는 상황을 토로한 것이다. 수신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편지를 검토한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첩으로 인해 집안에 분란이 생기면서 다산이 겪은 곤혹스러운 상황이 녹아있다”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다산과 관련한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동아옥션에는 다산의 아버지인 정재원과 손자 정대무가 쓴 편지도 함께 출품됐다.

조선시대 작품 중 보기 드문 12폭 수렵도도 공개된다. 17세기 후반∼18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등장인물들이 청나라 사람으로 보이지만 산수 배경은 조선의 모습이다. 수렵이 중요 생활수단이었던 고구려 때까지는 다양한 수렵도가 남아있지만 농경 사회였던 고려와 조선시대에선 수렵도를 찾아보기 힘들어 희귀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해진 조선 후기에 들어서 조선에서도 수렵도가 유행했다”며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수렵도의 시초격으로, 작품성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선조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도 다양하다. 24절기별 일출·일몰처, 적도와 황도, 남북회귀선이 표시돼 있는 ‘지구전후황도남북항성합도’와 1899년 전남 31개 군의 풍속과 지리를 상세히 담은 ‘전라남도각군읍지’ 책 등이 공개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옥션#희귀자료#문화재#조선#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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