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썰매로 올림픽트랙 체험” 관광객 몰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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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유명한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전경. 이곳 역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 애물단지가 될 뻔했지만 정부가 공공기금을 마련한 뒤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최고경영자를 선임해 살길을 찾았다. 위쪽 사진은 루지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 휘슬러스포츠레거시 제공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유명한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 전경. 이곳 역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 애물단지가 될 뻔했지만 정부가 공공기금을 마련한 뒤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최고경영자를 선임해 살길을 찾았다. 위쪽 사진은 루지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 휘슬러스포츠레거시 제공
평창 알펜시아슬라이딩센터는 한국 썰매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성지가 됐다. 하지만 이곳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후 운영주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켈레톤 윤성빈은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뒤 ‘2019년 휘슬러 세계선수권 우승’을 다음 목표로 잡았다. 캐나다의 휘슬러 트랙은 전 세계 슬라이딩 트랙 중 최고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선수들이 매해 빠지지 않고 들르는 필수 코스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휘슬러는 세계 트랙지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역시 2010 밴쿠버 올림픽을 위해 지었기 때문이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와 똑같은 사후 시설 활용 문제에 부닥쳤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갔는지 휘슬러스포츠레거시 최고경영자(CEO)인 로저 손에게 물었다.

○ 일반 대중의 활용을 늘리는 게 트랙 성공의 열쇠

손 CEO가 휘슬러스포츠레거시에 처음 부임한 2013년 2월. 당시 휘슬러 트랙에는 월드컵 스케줄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취임 목표 중 하나는 바로 트랙을 월드컵 투어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의 월드컵 개최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손 CEO는 “올림픽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이 트랙을 지었다. 이걸 안 쓰는 건 낭비”라고 강조했고 휘슬러는 2017∼2018시즌 월드컵까지 총 세 차례의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휘슬러는 북미에 있는 다른 3개 트랙(캘거리, 레이크플래시드, 파크시티)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캐나다팀 선수들의 경우 실내 스타트연습장이 갖춰진 30년 역사의 캘거리 트랙 쪽에서 비시즌 훈련을 마친 뒤 시즌 시작 전 비교적 높은 기술이 필요한 휘슬러에서 실전감각을 다진다. 또 자국에 트랙이 없는 국가들도 시즌 전후로 이곳을 찾아 훈련한다.”

하지만 그는 “평창 슬라이딩센터가 메이저 대회 유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트랙을 건설 중인 중국과, 평창 슬라이딩센터를 지닌 한국, 나가노 올림픽 때 트랙을 건설한 일본 등 아시아에도 이미 3개의 트랙이 있다. 하지만 이 트랙들이 월드컵 투어에 포함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월드컵은 1년에 8곳, 세계선수권은 1년에 1곳에서밖에 안 열리지만 전 세계 트랙은 총 17개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대회는 시설의 명성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재정에 큰 도움은 못 준다. 트랙이 재정적으로 자생력을 키우려면 대중이 얼마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휘슬러 트랙 역시 선수들에게서 얻는 수익보다 일반 대중에게서 나오는 수익이 10배가량 더 많다”고 설명했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는 대중 체험 프로그램으로만 1년에 150만 달러(약 16억 원) 수준의 수익을 낸다.

○ 어떻게 생존했나

휘슬러 트랙 역시 올림픽 이후 시설 관리주체가 나타나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었다. 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리치먼드에 위치한 오벌 스케이팅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관리주체가 나타나 실내를 개조한 뒤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었다. 하지만 인구가 약 1만 명에 불과한 휘슬러에는 적용되지 않는 해법이었다.

슬라이딩센터 외에도 스키점프 및 노르딕센터, 애슬릿센터 등을 맡겠다는 주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캐나다 정부는 약 1억1000만 달러(약 1180억 원)의 공공기금을 조성한 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을 3가지 시설에 배분해 운영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후 운영주체 물색에 나선 정부는 호텔비즈니스 전문가인 로저 손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나는 스포츠와는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곳 운영을 제안받았을 때도 휘슬러에서 가장 큰 페어몬트 샤토 호텔 총지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유럽 등 전 세계 호텔에서만 40년이 넘게 일했다. 하지만 어쨌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처음 부임했을 때 우리 트랙은 정부 보조금을 받고도 1년에 200만 달러(약 21억 원) 이상 적자였지만 대중 프로그램을 넓히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최근 2년 연속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 가까이 흑자를 냈다.”

휘슬러 트랙은 월드컵 레벨의 전문 선수들에게는 9월 말부터 트랙을 집중 개방하고 다른 지역에서 월드컵이 진행되는 시기인 12월부터는 일반인들 대상으로도 하루에 2시간씩 트랙을 개방한다. 4월에 문을 닫는 트랙은 6월에 다시 문을 연다. 단 9월까지는 빙판 유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휠 봅슬레이’ 프로그램을 관광객 대상으로 운영한다.

정부는 시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개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 운영은 ‘낙하산 인사’가 아닌 호텔 지배인 출신의 CEO에게 맡겼다. 건강한 자체 수익구조 마련에 힘을 쓴 휘슬러 트랙이 ‘세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쓰지 않게 된 비결이다.

휘슬러=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평창 알펜시아슬라이딩센터#썰매#스켈레톤#윤성빈#평창올림픽#휘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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