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양에선 ICBM, 강릉에선 ‘평화’… 北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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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제 낮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인민군 창건 70돌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강행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날로 건군절 날짜를 옮겨 벌인 군사 퍼레이드다. 지난해 발사한 화성 계열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전력도 등장했다. 그런데 저녁엔 북한 예술단의 올림픽 개막 축하 공연이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우리 전통 민요, 북한 노래와 함께 ‘J에게’ ‘사랑의 미로’ 같은 한국 대중가요도 선보였다.

북한이 어제 열병식에 동원한 병력 규모는 예년과 비슷했으나 진행 시간을 예년보다 크게 줄였다. 또 TV로 생중계하지 않고 녹화방송을 내보냈고 외신기자도 초청하지 않았다. 국제적 시선을 의식해 대외적 무력시위 대신 ‘내부 행사’로 치르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 세계를 위협하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대거 과시했다. 한 손엔 핵무기를 쥐고 위협하면서 한 손엔 평화의 노랫가락에 맞춰 손짓하는 형국이다.

북한은 오늘 올림픽 개막식에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등 고위급 대표단을 보낸다. 북측 대표단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내일 북측 대표단을 접견한 뒤 오찬도 베풀기로 했다. 이 자리에선 남북 화해와 대화의 진전을 위한 의외의 조치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남측과는 화해 무드를 연출하면서도 미국과는 대립하는 통남봉미(通南封美)식 갈라치기 전술이다. 북한은 어제 외무성 국장을 내세워 “우리는 남조선 방문 기간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도 북한의 교란전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어제 문 대통령과 만나 북한의 영구적·불가역적 핵 포기를 위해 최대한의 압박을 하겠다며 “미국의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삼 한미 양국 간 강력한 결속력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를 향해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 흔들려선 안 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

그러는 사이 북한의 제재 흔들기는 효과를 나타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재 대상인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訪南) 승인을 요청했다. 마식령스키장 훈련을 위한 전세기 방북, 예술단 수송을 위한 만경봉92호 입항에 이어 유엔 제재 대상자의 방남까지 이뤄졌다. 일시적 예외조치라고는 하나 육해공 개방에 이어 인적 제재까지 푼 셈이다. 대북제재에 틈새를 만드는 데 한국이 앞장서 나선 모양새가 됐다.

북한의 매혹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를 쥐고 평화를 외치는 이중적 기만전술로는 국제제재의 압박을 벗어날 수 없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도 어제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는 나란히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대표단을 보내면서 최소한 ‘비핵화를 대화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라도 전해야 한다.
#북한 열병식 강행#대륙간탄도미사일#북한 예술단 개막 축하 공연#최휘 노동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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