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슬빵’ 정민성 “고박사 대사 외우려고 필사…A4용지 60장, 정말 뿌듯했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10일 06시 57분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낸 정민성은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고박사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라는 그는 “언제 또 큰 역할이 주어질지 모른다. 이전처럼 작은 역할도 마다지 않겠다”고 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낸 정민성은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고박사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라는 그는 “언제 또 큰 역할이 주어질지 모른다. 이전처럼 작은 역할도 마다지 않겠다”고 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1999년 영화 ‘박하사탕’ 단역으로 데뷔
친구 벤처회사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도
연기의 꿈 버리지 못해 다시 영화 무대로

워낙 독특한 인물 많아, 고박사 묻힐까 걱정
법률용어 등 대본 양 많아 난생 처음 필사
이감 전 제혁에게 건넨 야구일지 자필 작성


배우 정민성(43)은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고박사 역을 맡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3연속 히트시킨 연출자 신원호 PD가 방송 전 “드라마는 실패하더라도 출연자는 주목받길 원한다”는 바람이 이루어졌다. 주변의 시선은 관심으로 가득하고, 가족의 응원은 더욱 강해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정민성은 이제 쑥스러워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무명이 아닌 조금 덜 알려진 배우”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10년 넘게 연기하며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처음이어서 부담감이 컸다.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제 캐릭터가 주목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워낙 독특한 인물이 많아, ‘묻히지 않고 살아남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하하!”

정민성은 지난해 12월21일 방송한 10회에서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면서 자연스럽게 하차했다. 그는 “영화 출연 때는 촬영기간이 100일이라면 나는 보통 1주일 정도만 참여였는데 이번에는 반 이상을 함께 했다. 출연진, 스태프들과 많이 친해져 이별하는 극중 상황이 실제와 겹쳐 우울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종영까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은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털어낸다.

“단체 채팅방에 20명 정도 있는데, 방송하는 날에는 다 같이 시청률 맞추기를 한다. 맞춘 사람에게는 소정의 상품을 주기도 하고. 하하! 안부를 주고받는 ‘단톡방’이 소속함을 느끼게 해준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고박사’를 연기한 정민성. 사진제공|tvN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고박사’를 연기한 정민성. 사진제공|tvN

“평생 잊을 수 없을” 1차 오디션부터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오디션의 매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1차 오디션 후 2차를 보기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있을 때 2차 오디션을 통과하고, 3차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땐 정말 가슴이 벅찼다. 대학 합격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웃음).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날아갈 정도로 기뻤다”고 캐스팅 당시를 떠올렸다.

정민성은 생각하면 할수록 드라마 한 편으로 얻은 것이 참 많다고 했다. 인지도를 얻었고, 좋은 동료를 만난 것도 그렇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대기만성형 배우의 존재감을 이제라도 알게 됐고,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를 발견한 반가움도 느끼고 있다.

정민성은 1999년 영화 ‘박하사탕’의 단역으로 데뷔하고 서른 살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 사이 친구가 차린 벤처회사에서 5년간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일했지만,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며 젊은 시절부터 키웠던 연기의 꿈은 가슴 한쪽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그는 다시 연기의 세계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열정을 불태우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10년간 달리면서 정민성이 맡은 역할은 대부분이 경찰이다. 영화 ‘올드 미스 다이어리’(2006), ‘작전’(2008), ‘킬 미’ ‘무법자’(이상 2009), ‘황해’ ‘아저씨’ ‘반가운 살인자’(이상 2010), ‘신세계’(2013) 등에서 착한 경찰 또는 나쁜 경찰 역할을 소화했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의 재소자 역할은 다소 낯설었다. 많은 분량의 대사도 처음일 뿐더러 구사하기 어려운 법률용어 암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도 많이 느꼈다.

“대본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연기하고 처음으로 시도했는데 잘 외워졌다. 그렇게 필사한 양이 A4용지 60장정도 되는데 굉장히 뿌듯하더라. 버리지 않고 평생 간직하려고 한다. 이때 열심히 하려고 했던 느낌을 잃지 않고, 앞으로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극중 이감 전에 주인공 김제혁(박해수)에게 건넨 야구일지도 3시간에 걸쳐 자필로 작성한 것이다.

배우 정민성.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우 정민성.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정민성은 2014년부터 3년의 공백기를 거친 후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연기자로서 마음을 새로 다잡은 만큼 올해 각오가 남다르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불과 2개월 전을 돌아보니 당시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었던 “휴식은 조금 더 멀리 뛰기 위한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 내심 안도한다.

“저 같은 무명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이번에 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작은 역할도 마다지 않겠다.”

연기자의 꿈을 이루어나가는데 있어서 가족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아내와 9살, 6살의 두 아들이 너무 좋아한다. 드라마 속 상황을 이해하는지 제 모습을 보고 펑펑 울기까지 하더라. 바라보고 있으면 안쓰러우면서도 뿌듯하다. 첫째 아들의 학교 친구들, 둘째의 유치원 선생님들까지 저의 이야기를 하는지 아이들 입이 찢어진다.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백솔미 기자 b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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