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저질 정보 부추기는 대중과 전문가 사이 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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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더 바보가 될 뿐만 아니라 더 심술궂은 사람이 된다.―전문가와 강적들(톰 니콜스·오르마·2017년)》

지난해 말 즐겨 보던 TV드라마 주인공이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는 모습이 멋지고 편해 보여서 따라 한 적이 있다. 속이 거북해도 고수했던 ‘아메리칸 스타일’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기상 후 몸을 각성시키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 카페인을 섭취하면 두통과 속쓰림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였다.

하지만 “모닝커피는 독”이라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었다. 얼마 후 한 TV프로그램에서 코르티솔이 부족한 ‘저녁형 인간’들에게는 모닝커피가 효과적이라는 대학병원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위장병이 있거나 각성 상태인 사람은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다시 안심하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받아들인 해프닝이었다.

뉴스의 홍수 시대지만 진짜 팩트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 내용이 전문지식일 경우 옥석가리기는 더 어렵다. 수많은 예외와 정교한 접근들이 편집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일부만 인용되는 경우도 많다. 편집되거나 잘못 이해한 정보의 일부를 전체 사실인 양 확산하는 게 다반사다. 포털 검색순위가 높으면 내용과 상관없이 단어 몇 개가 곧장 사실이 되는 분위기에서 전문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 해군대학 교수이자 구소련 전문가인 저자는 비전문가들이 미국과 러시아 간 냉전 해결책에 대해 늘어놓는 장광설에 혀를 차며 이 책을 썼다. 그는 의사, 법관, 교수, 엔지니어 등 전문가의 진단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거부하는 현상을 ‘전문지식의 죽음’이라 표현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저질 정보뿐 아니라 지식의 전달이 아닌 취업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 매체의 난립으로 질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미디어 환경 등을 이유로 들었다.

주목할 점은 이런 현상에 전문가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임신부에게 입덧 방지용으로 처방되다가 기형아 유발 부작용이 밝혀진 탈리도마이드 사건, 계란 섭취의 유해성 논란 등 전문가의 오판이 부른 참사가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더 치명적인 원인은 그들의 불통이다. 문제 해결 열쇠를 쥔 진짜 전문가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외면하는 사이 방송과 인터넷엔 자극적인 토막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책#전문가와 강적들#톰 니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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