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년동아, 아버지는 동아일보… 父子를 이어준 끈이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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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아일보]<7>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형인 박종후 씨(왼쪽)의 중학교 졸업 당시 아버지(고 박영조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박 장관의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학교(경남 김해시 진영중) 은사다. 박능후 장관 제공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형인 박종후 씨(왼쪽)의 중학교 졸업 당시 아버지(고 박영조 씨)와 함께 찍은 사진. 박 장관의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학교(경남 김해시 진영중) 은사다. 박능후 장관 제공
‘탁.’
 
매일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대문을 넘어 신문떨어지는 소리가 내 방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언제부턴가 그 소리에 저절로 눈을 떴다. 경남 마산시(현재 창원시) 상남동에 살 때다. 선생님인 아버지는 동아일보 애독자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능후야, 신문은 최고의 교과서란다”라며 소년동아일보를 구독해줬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1965년)이었다. 이후 6학년까지 매일 소년동아일보를 펼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어린이 신문을 보게 하는 부모는 많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혀야 겠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던 시기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신문을 권했고 책을 많이 사주셨다. 많이 읽는 것이 결국 힘이 된다는 것을 잘아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영향으로 내가 교수까지 하게 된 것 같다.
 
당시 소년동아일보는 동아일보 사이에 끼어 있었다. 동아일보는 아버지 방에 넣어드리고 소년동아일보는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을 알아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마산은 시골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소년동아일보는 매일매일 나에게 큰 기쁨과 놀라움을 줬다. 기사를 보면서 나는 매일 새로운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서울 아이들이 즐겨 먹는다는 ‘라면’ 기사를 읽고 라면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기억이 난다. 연재만화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각종 신기한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소년동아일보는 그야말로 내게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동아일보를 읽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한국에서 가장 앞선 신문이자, 가장 살아 있는 언론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일보를 읽고 관련 정치적 이슈나 사회 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토론한 일이 많았다. 신문은 아버지와 나를 끈끈히 이어주는 존재였다.
 
고3이던 1974년 어느 날 어김없이 집으로 배달된 동아일보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광고가 있어야 할 곳이 온통 백지로 남아 있었다. 굉장히 이상했다. 사연을 두루두루 물어 정부의 광고 탄압 사태를 알게 됐다. 학교 친구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부산고 학생들은 의협심이 강했다.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결의했다.
 
당장 친구들과 함께 동아일보에 보낼 성금을 모았다. 고등학생이라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반친구 60여 명이 동전이라도 낸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몇백 원을 냈다. 그렇게 모인 성금을 동아일보 지역 지국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구도 남겼다. ‘견디어 내라. 힘내라. 불의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라. 동아일보여.’ 얼마 후 우리 집에 배달 온 동아일보 광고에 나와 친구들이 쓴 그 격문이 실렸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동아일보는 나와 아버지를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였다. 나와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도 참 사이가 좋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집(부산)에 내려가면 아버지와 토론을 즐겼다. 어떨 때는 저녁에 시작한 토론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거의 매번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한 것 같다. 주로 동아일보에 나온 학생 시위와 민주주
의, 각종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나의 정은 깊어졌다.
 
성인이 된 이후 한동안 소년동아일보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인연을 맺을 계기가 생겼다. 경기대 교수 재직 시절인 2010년쯤으로 기억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어린이신문을 후원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순간 신문을 함께 읽던 아버지와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소년동아일보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내게 세상을 보는 창을 준 것처럼…. 그 후 1년간 경남 함안군의 한 초등학교가 소년동아일보를 구독할 수 있도록 후원했다.
 
난 아직도 동아일보라고 하면 내 소년 시절과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3만 호 지령을 앞둔 동아일보에 바란다. 항상 올곧고 날카롭게 세상을 비판하는 언론관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능후#보건복지부#장관#동아일보#아버지#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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