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중딩? 책 만들다 보니 생각나무가 쑥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양천구 ‘청소년 출판기념회’
주제 선정부터 최종 교열까지 인쇄 이전 모든 작업 직접 참여
“마감시간 쫓기는 등 힘들었지만 나와 주변 되돌아본 소중한 경험”

서울 양천구 갈산도서관에서 22일 열린 ‘청소년 인문책 쓰기 합동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자신이 펴낸 책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양천구 갈산도서관에서 22일 열린 ‘청소년 인문책 쓰기 합동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자신이 펴낸 책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중딩’ 작가들이 쓴 우리 이야기, 한번 보실래요?”

22일 오후 6시 서울 양천구 갈산도서관에서 조촐하지만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지하 1층 한울관 무대에 올라 씩씩하게 ‘저서’를 소개했다. 제1회 양천구 청소년 인문책 쓰기 합동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청소년이 자신의 책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능동적으로 독서하고 인문학적 사고를 확산시키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운동의 결실이었다. 양천구는 올 6월 관내 중학교를 대상으로 인문책 쓰기 사업을 공모해 선정된 목운중 봉영여중 신월중 양천중에 150만 원씩 지원했다. 각 중학교는 학생들의 글을 모아 책을 한 권씩 만들게 했다.

학교 도서관 사서교사의 권유로 저술을 시작한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지해졌다. 점심시간의 휴식을 포기하고 도서실에 모여 편집회의를 했다. 주제는 자유롭게 정했다. 여름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사서교사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출판사에서 출판과정을 배워 직접 편집했다.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자체 모금활동도 벌였다. 신월중은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은 250만 원으로 책 속의 그림을 컬러로 했다.

주제 선정부터 최종 교열까지, 인쇄 이전의 모든 작업을 학생들이 한 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발상이 기발한 책은 많다. 신월중 황지민 군(13)은 ‘선생님께 완벽하게 찍히는 방법’ ‘학기 초에 철저하게 혼자가 될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아 ‘힘들고 어려운 학교생활을 만들어주는 조그마한 팁’이라는 글을 썼다. 황 군은 “학교생활에서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을 반대로 적었다”고 말했다. 신월중 학생들이 만든 책 ‘신중한 열네 살’은 시 소설 판타지 레시피 감상문 등 글쓰기 형식을 대부분 망라한 글들이 담겼다.

저자로 참여한 4개 학교 학생 48명은 “마감시간에 쫓기는 등 처음 겪는 상황이 힘들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자신과 주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봉영여중 이한이 양(14)은 “공부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모두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다. 내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책 디자이너나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학생도 여럿이었다.

책을 만들어 낸 약 5개월간 학생과 어른이 같이 성장했다. 봉영여중 전윤영 사서교사(48)는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떠나 타인을 이해하는 수준이나 소통 능력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양천구청 박현희 교육지원과 주무관(34)은 “어떤 학생이 외로움에 대해 쓴 글에서 ‘외로움이라는 가치를 인정하라’고 했을 때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각 학교가 출간한 책 50∼100권은 학교 도서관과 구립도서관에 비치된다. 양천구는 인문책 쓰기 사업을 고등학교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얀천구#갈산도서관#출판기념회#중학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