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판결, 오너경영 순기능도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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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심 판단에 주목

롯데그룹 총수 일가에 대해 22일 내려진 1심 판결문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오너 경영’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적시해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균형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배임죄와 관련해서도 보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돼 향후 ‘고무줄 잣대’ 논란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24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5)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롯데 총수 가족들에 대한 부당급여 지급과 개인회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기업 사유화의 단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서미경 씨(58) 모녀에게 롯데면세점 매점 운영권과 공짜 급여를 넘긴 것에 대해서다. 판결문은 이어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범행은 성실하게 일한 임직원들에게 자괴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기업집단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멀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등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판결문은 “(신 총괄회장은) 창업주로서 그룹에 일생을 기여한 공로가 있고 그릇된 구식 경영사고가 본건 범행의 원인이 됐다”면서도 “사재로 계열사 손실을 보전하고 배당을 받는 대신 새롭게 투자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유와 경영 일체의 경영원칙이 현재 그룹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양면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태도는 롯데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단죄하면서도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과 책임감에 의한 한국형 대기업 성장 방식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읽힌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모두 장단점이 있어 일괄적으로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전자·반도체 산업이 일본을 제치고 도약한 것은 오너들의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가능했던 ‘스피드 경영’에 힘입은 바 크다”고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2)과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62) 등의 계열사 부당 지원 관련 배임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단된 것은 향후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롯데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에 계열사인 롯데기공을 끼워 넣고 롯데피에스넷의 유상증자에 그룹 계열사들을 동원한 것 모두를 배임이라고 봤다. 그러나 법원은 신 회장과 황 사장 등이 이런 경영적 판단을 내릴 때 손해를 입히려는 고의성이 없었고 재산상 손해도 특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배임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엄격히 본 것이다.

신 총괄회장이 비상장주식을 그룹 계열사에 고가 매도한 것을 배임으로 본 검찰 주장 역시 무죄로 판결이 났다. 검찰은 롯데정보통신 등 그룹 5개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케미칼에 고가에 팔았다는 이유로 신 총괄회장을 기소했다. 법원은 이 역시 고의성 입증이 어렵고 재산상 손해 발생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봤다.

과거에는 배임에 대해 너무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기업인들의 정상적인 경영적 판단조차 수사 대상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이 많았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배임죄 처벌을 우려해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할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많다는 불만이 제기되곤 했다.

이번 판결로 기업들의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이 보다 신중해지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지난달에는 대법원이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에 대해 공동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면 손해가 났다고 배임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나왔던 원심을 깨고 일부 무죄 취지로 부산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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