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일과 삶의 균형 좇아 ‘내가 중요한 세상’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2018 뉴라이프스타일 트렌드

2017년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한 당황스러운 한 해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중국과의 외교 마찰, 안보 불안 등 정치 사회 경제 전 분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혼돈을 겪었다. 여기에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슈퍼 매치 결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스로 학습해 바둑의 기술을 익힌 ‘알파고 제로’가 기존의 ‘알파고 리’와 ‘알파고 마스터’를 가뿐히 이기면서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갖게 됐다.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 속에서 미국의 파워블로거 마크 맨슨이 쓴 책, ‘신경 끄기의 기술’이 국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꼽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내게 진짜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이런 심경 변화는 2018년, 소비를 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38호(2017년 12월 1일자)에 실린 ‘2018 뉴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요약해 소개한다.

○ ‘워라밸’ 넘어 ‘워크라이프통합’

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워라밸’, 즉 ‘워크라이프밸런스(일과 삶의 균형)’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일·가정 양립지수가 낮은 대표적인 국가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과 가족을 포기하고 일에 매달렸던 기성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오랜 취업난과 조기 퇴직 등의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회사를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고 ‘나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이러한 워라밸 트렌드는 한국만의 이슈는 아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핀포인트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 30대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58%는 ‘회사가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삶과 일의 균형을 존중하는 근무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 인재를 잡기 위해 기업들은 근무환경 개선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회사 부지 내에 개인적 삶을 편하게 해줄 다양한 편의시설을 마련하거나, 통근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 등이 그 실천 사례다.

최근에는 워라밸을 넘어 ‘워크라이프통합’이 중요하게 부상함에 따라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서비스가 적극 도입되고 있다. 일상적인 업무환경에서 벗어나 여행과 같은 뜻밖의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22년까지 글로벌 노동인구의 42.5%는 ‘디지털 유목민’, 즉 ‘움직이며 일하는 신인류’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일과 삶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로 여행 산업의 지형이 바뀌면서, 호텔들도 재빠르게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모델로 무장하고 있다. 예컨대 홍콩의 숙박 전문기업인 오볼로호텔은 ‘모조 노마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업무를 위해 여행을 하며 호텔에 머무르는 장기 투숙객들에게 공동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역전문가와의 네트워킹 기회, 도심 내 무료 와이파이 제공 등의 서비스를 넣은 패키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 우리는 이처럼 좀 더 일과 삶이 통합돼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간의 경험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는 그냥 눈감고 모르는 척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마음껏 즐기며 살자’며 ‘욜로(YOLO·You Live Only Once)’를 외쳤던 소비자들은 이제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면서 자신의 ‘스튜핏’한 소비 패턴을 되돌아보고 ‘그뤠잇’한 선택을 통해 보다 조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갈 것이다.

○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요즘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끄는 웹툰이 있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다. 지난해 직장인들의 공감대 속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양경수 작가의 ‘양치기 양경수의 세상 약치기’처럼 ‘며느라기’는 사석에서나 나올 법한 생활 속 갈등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약치기’는 직장 상사에 대한 ‘돌직구’ 발언 등으로 보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해지는 ‘사이다 만화’라면 ‘며느라기’는 한 가정의 며느리가 된 새댁의 억울함을 보느라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구마 만화’란 점이 차이점이지만 이 두 웹툰 모두 금기시되던 사회적 이슈를 수면 위에 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 대한 이해, 토론을 통해 공감과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디지털에 익숙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 경험이 풍부한 2030세대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출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오이코패스와 스트리트 패션

워라밸 세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에 대한 선택에 더 확신을 갖는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 사례다. 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은다고 공지한 지 보름 만에 페이스북에 9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 이들은 오이를 싫어한다는 생각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오이코패스’라 부른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생겼다.

취향에 대한 인정은 이제 이처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넘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로 옮겨가고 있다. 더 나아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취향 씨족’을 형성한다. 이런 취향 씨족을 바탕으로 성장한 브랜드가 스트리트 브랜드다. 이러한 브랜드의 대명사는 얼마 전 루이뷔통과 협업했던 패션 브랜드, 슈프림이다. 슈프림은 브랜드 론칭 초기부터 뉴욕 스트리트 문화와 취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놀라운 점은 슈프림과 루이뷔통의 협업이 발표됐을 때, 오히려 슈프림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셌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훼손한다는 게 이들이 불만을 가진 이유였다.

‘빅 브랜드’의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한때 빅 브랜드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전 세계적으로 판매해, 유통업계 내 최상의 단계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취향이 중요한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명확한 취향을 반영하는 ‘스몰 브랜드’들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종합하자면 2018년, 국내 소비자들은 조금 더 냉정해지고 현실적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더 이상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보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가치와 취향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것이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 mindy@trendlab506.com
정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dbr#경영#전략#라이프스타일#워크라이프밸런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