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밥상머리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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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미국 그래픽노블 ‘겟 지로(Get Jiro·시공사)’는 얘기 자체가 골 때렸다. 가까운 미래에 요리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다는 설정이었다. 모든 게 넘쳐흐르다 보니 결국 원초적인 식욕(食慾)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는 식이다. 요리사가 정치 경제를 쥐고 흔드는지라, 식사 예절을 문제 삼아 칼부림을 해도 뭐라 하는 이가 없다. 글쓴이가 유명 셰프라는데 평소 테이블 매너 없는 손님한테 꽤나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

요리가 정치까지 주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관계가 심상찮은 건 틀림없다. 노자(老子)가 그랬단다. “나라를 다스리는 건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갸우뚱. ‘깜냥’ 떨어지면 비린내가 난다는 뜻일까. 하여튼 국제정치에선 음식을 둘러싼 이런저런 후일담이 적잖이 쏟아진다.

차이쯔창(蔡子强) 홍콩중문대 교수가 쓴 ‘정치인의 식탁’(애플북스)이란 책을 보면 요리는 상당히 요긴한 정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격변의 20세기엔 이런 능력이 출중했던 이들이 많았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와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대표적인 경우다.

루스벨트의 요리 정치는 ‘핫도그 외교’가 최고로 꼽힌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앞두고 영국 왕실을 자국에 초대했다. 그런데 의전이라면 어디서도 최고로 받았을 양반들을 모셔다 놓고, 잔디밭에 끌고 가 핫도그를 나눠먹었다. 당연히 양국 언론은 “무례의 극치”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영국에 반감이 컸던 국민을 달래려 각본대로 움직인 ‘쇼’였다. 서민 가족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해 “우리가 남이가”란 인식을 자연스레 심어줬다.

그런 고수였던 루스벨트도 스탈린에겐 당한 적이 있다. 한반도도 무관치 않은 1945년 얄타회담 때였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수행비서 존 마틴에 따르면 캐비아와 버터, 감귤 등 귀하디귀한 음식이 “기관총이 불을 뿜듯” 쏟아져 나왔다. 당시 캐비아 최대 생산국이던 소련은 이를 전면 수출 금지시키고 자국에만 공급하던 시절이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이 귀한 걸 우린 맘껏 즐긴다”는 과시와 “이리 풍족하니 아쉬울 게 없다”는 허세였다. 스탈린은 결과에 매우 만족하며 모스크바로 돌아갔단다.

그만한 역사적 방점을 찍은 건 아니겠지만,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만찬에 오른 ‘독도새우’도 반향이 크다. 굳이 도화새우란 공식 명칭을 놔두고 독도새우라 부른 청와대 메시지는 자명하다. 문외한의 외국인도 “한국엔 독도란 맛난 새우가 나는 섬이 있나 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루스벨트와 스탈린처럼 정치인의 식탁은 한두 가지 포석만 염두에 두진 않는다.

이번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본엔 ‘대사 각하의 요리사’란 만화가 있다. 주베트남 일본대사의 관저 셰프가 요리로 복잡한 외교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데 기여한다는 내용이다. 그중에 일본 매실장아찌와 베트남 메에(타마린드)를 절묘하게 배합해 양국 관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청와대 만찬 주제도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였다. 만화에선 밥상머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이를 하수(下手)로 본다. 일본은 남의 잔칫상 갖고 붉으락푸르락하기 전에, 뭘 해결하고 뭘 받아들여야 함께 갈 수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볼 때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정치인의 식탁#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we go together#독도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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