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내로남불’이 인사 알고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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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장차관급 인재를 고르는 과정 말이다. ‘시중에 도는 구설’ 때문에 사퇴한 김기정(국가안보실 2차장)을 시작으로 ‘허위 혼인신고’ 안경환(법무부 장관)과 ‘주식 요정’ 이유정(헌법재판관)을 포함해 7명이 낙마했다. 10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절세(節稅)미남’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까지 넘어지면 8명이 된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건 앞선 실패에서 못 배우기 때문인가. 아니면 안 배우기 때문인가.

늦었지만 청와대는 인사 알고리즘을 뜯어봐야 한다. 알고리즘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따르는 방법이다. 네이버의 뉴스 배치가 알고리즘의 결과물이고, 인간을 움직이는 것도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다. 데이터과학자인 캐시 오닐 박사는 저서 ‘대량살상수학무기’에서 좋은 알고리즘의 특징으로 투명성, 방대한 데이터, 피드백 시스템을 꼽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구의 ‘머니볼’이다. 오직 공개된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승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의 인사 알고리즘은 나쁜 알고리즘의 전형이다. 좋은 알고리즘은 목표와 작동 방식이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블랙박스다. 공직 인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후보자는 어떤 기준에 따라 누가 고르나. 추려진 후보들의 검증은 어떻게 하나. ‘식품의약품안전을 책임질 수장은?’이라는 질문에 ‘약사 출신 대통령 측근 류영진’이란 답도 틀렸지만 풀이 과정이 생략된 건 더 큰 문제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사퇴할 때 “누가 추천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그게 중요하냐”며 답하지 않았다. 인사추천실명제는 대선 공약이었다.

머니볼에서는 선수들의 기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한다. 청와대의 인재풀이 바닥났다는데 혹시 반쪽짜리는 아닌가. 직무 수행능력과 직결되는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는가.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항목엔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부여하나.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오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론 신봉은 왜 빠뜨렸나.

마지막으로 피드백 시스템이다. 머니볼에서는 알고리즘의 예측치와 실제 결과를 비교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확인하고 수정한다. 청와대는 6월 안경환 후보자의 사퇴 후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조대엽(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이유정 사태가 터졌다. 9월 이유정 낙마 후엔 인사자문위원회가 설치됐지만 박성진, 홍종학의 지명을 막지 못했다. 피드백 시스템이 고장 난 건가, 아니면 속으론 “야당의 땡깡 탓”이라고 성내면서 고치는 시늉만 한 건가.

오닐 박사는 나쁜 알고리즘이 진짜 나쁜 이유가 확장성 때문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엉터리 알고리즘은 공공기관장 인사 알고리즘까지 전염시키고 있다. 7일 취임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의 노후자금 600조 원을 책임져야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활동 4년이 관련 경력의 전부다. 기관장 자리가 비어 있거나 올해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이 100개가 넘는다.

2012년 대선에서 지자마자 차기 집권을 준비했다는 정부에서 웬 인사 참사인가. ‘어차피 캠코더, 낙하산 인사 할 건데 인사의 목표나 방법론을 고민해서 뭐 하게?’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 과거의 잘못을 쓸어내는 일 못지않게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는 “영업비밀”이라며 감출 생각 말고 착한 인사 알고리즘부터 만들어 공개하라. 인사혁신처까지 따로 둔 정부가 ‘내로남불’이 인사 알고리즘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문재인 정부#청와대 인사#인사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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