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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부터 40년째 “기부는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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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부터 40년째 “기부는 의무”

이미지기자 입력 2017-11-06 03:00수정 2017-11-0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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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아이들 ‘영웅’을 찾아]<4> 최신묵 ㈜가이아 대표이사
후원하는 해외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있는 최신묵 ㈜가이아 대표이사.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점상에게 지폐를 내밀며 생각했다. ‘거스름돈을 주기 전에 빨리 돌아서야지.’ 거스름돈 받는 것을 잊은 척하며 ‘기부인 듯 기부 아닌 기부’를 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가 돌아서자마자 물건값의 20배에 이르는 돈을 받은 걸 안 노점상은 짐을 싸서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순간 자신의 마음에 섭섭함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낀 최신묵 ㈜가이아 대표이사(66)는 “아차” 싶었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한 기부가 아니었는데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았다고 야속하게 느낀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일을 겪은 뒤 최 대표는 절대 보상이나 감사인사, 자기 만족을 위해 기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에게 기부는 “지극히 당연한 의무”다. 최 대표는 “잘나지도 않은 내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다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내 돈이 아니라 ‘잠시 자신에게 맡겨진 돈’이라는 것이다.

그의 기부는 ‘내 돈’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만드는 회사의 어엿한 대표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8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12세 때 어머니를 백혈병으로 여의었다. 최 대표는 1975년 대우에 입사한 뒤 가족들 생활비와 아버지 간병비를 대야 했다. 팍팍한 살림이었지만 첫 월급부터 한 푼 두 푼 모아 모교인 고려대에 당시 월급쟁이로선 큰 돈인 2000만 원을 기탁했다.


1992년 대우를 그만두고 창업에 나섰다.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린 지 몇 년 만에 빚이 쌓였다. 600∼1000명에 이르는 하청 인력의 인건비를 주기 위해 가재도구까지 내다팔아야 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최 대표는 “한 5년간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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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의 인연은 그가 애니메이션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인의 권유로 정기 기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서울지역본부 2대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후 8년간 후원회장을 지내며 초록우산에 기부한 돈만 3억 원에 이른다. 다양한 나눔 활동으로 2006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하지만 최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 제대로 응한 적이 없다. 그는 “돈이 풍족하면 나눠주는 게 당연한 의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내와 딸, 아들에게서 ‘향후 회사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비율은 반드시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에게 여러 차례 당부했다. “제가 한 기부가 대단한 것처럼 쓰지 마세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고액후원자 모임 ‘그린노블클럽’ 참여를 희망하는 후원자는 재단 상담센터(1588-1940, www.childfund.or.kr)로 문의하면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동아일보#초록우산 어린이재단#기부#최신묵#㈜가이아#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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