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표절과 독창성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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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관하여/엘렌 모렐-앵다르 지음·이효숙 옮김/464쪽·2만3000원·봄날의책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비평가 장 프레롱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자 시로 반박했다. “일전에 어느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뱀 한 마리가 장 프레롱을 물었다./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죽은 것은 바로 뱀이었다.” 글을 발표할 때마다 집요하게 공격하는 프레롱에 대한 풍자다. 그런데 볼테르는 이 시마저 100년 전 발표된 라틴어 ‘풍자시 선집’을 차용했다. 모방이라도 새로운 창작이라면 무엇이 문제냐는 냉소적 반박이다.

표절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문학 작품에서 표절의 역사와 그 경계에 대해 다룬다. 표절은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개인’이 출현하면서 조금씩 명확해진 개념이다. 고대에는 법적 차원에서 지적 소유권 개념이 없었으며, 라틴 문학은 당연하다는 듯 그리스 대가의 저술을 인용 표시 없이 차용하곤 했다. 집단 작업이 흔히 행해졌던 중세에는 저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도 드물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콜라주, 유희적 글쓰기 등으로 인해 표절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작가로서의 윤리보다 금전적 문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책의 수명은 짧아지고, 수익성을 위해 빨리 책을 내기 위해 표절 유혹은 더 강해졌다.

저자는 독창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마무리 짓는다. 발자크 소설 ‘미지의 걸작’의 화가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는 작품을 그리려다 찢어버리고 만다. 이카루스처럼 땅을 밟지 않으려는 꿈은 비현실적이다. 독창성의 반대인 표절자도 걸작을 꿈꾼다. 표절과 독창성 사이의 중용을 경계 짓는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표절에 관하여#엘렌 모렐 앵다르#이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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