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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한글 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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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한글 맞춤법

조종엽기자 입력 2017-10-09 03:00수정 2017-10-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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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1912년 ‘언문철자법’의 의도
즐거운 한글사랑 571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내 세종이야기 전시관을 찾은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연휴를 보내고 있다. 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마음을 그려내는 빛, 한글’이라는 주제로 한글날 경축식이 열린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는 최초의 성문화된 한글 맞춤법으로 평가되는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공포한다. 이 맞춤법이 사실은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한글을 활용하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 일본인 경찰이나 교사의 한국어 습득을 염두에 두고 정한 것이어서 한글 표기법을 퇴보시켰다는 연구가 나왔다.

동아일보는 김주필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7)가 ‘국어사연구’에 투고한 논문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1912)의 특성과 문제점”을 게재 전 입수했다. 앞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이 맞춤법을 제정하기 위해 1911년 7∼11월 5차례 열린 ‘조선어 조사회의’ 회의록을 찾아내 2004년 공개했다. 권 교수는 당시 “한글을 일본어 50음도 틀에 맞춰 일본어의 발음기호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주필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 회의록을 한글 표기 역사 관점에서 정밀 분석했다.

1911년 7월 28일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은 조선어 조사회의 첫 모임에서 “언문(한글) 가나 표기법 회의를 개최함에…”라며 인사말을 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는 애초부터 일본어의 가나를 한글로 표기하는 법이 이 맞춤법의 핵심 목적이었음을 뒷받침한다. 또 도쿄외국어대 교수 가나자와 쇼자부로가 맞춤법 검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12년 펴낸 ‘일어유해’ 서문에서 “한마디라도 많은 국어(일본어)를 이해하는 조선인을 한 사람이라도 많이 양성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한 일”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 방증이다.

일제가 제정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은 ‘ㅱ치’(꽃이) ‘압흘’(앞을) ‘어덧다’(얻었다)로 표기하도록 규정했다. 주시경(1876∼1914) 어윤적(1868∼1935) 등 우리말 학자들이 이보다 앞서 1909년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히고 고정해 적는 ‘형태음소적 표기’를 원칙으로 ‘국문연구의정안’을 마련했지만 그보다 훨씬 퇴보한 것이다. 의미 단위인 형태소를 살리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 15세기 표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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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본인 경찰, 교사 등의 우리말 습득 편의가 맞춤법의 목적 중 하나였던 탓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우리말의 음운규칙을 모르는 일본인에게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적 표기’가 쉽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윤적이 조사회의에 참여해 반대를 무릅쓰고 ‘형태음소적 표기’를 관철시켰지만 조선총독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며 “그럼에도 총독부는 철자법을 공포하면서 ‘조사촉탁원에게 명하여 조사 결정하게 했다’고 거짓으로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왜곡한 맞춤법은 한글학자들이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정정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시대#총독부#한글#맞춤법#언문철자법#1912년#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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