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개인의 질병에 사회가 갖는 책임은 어디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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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동아시아·2017년) 》
 
긴 연휴에 영국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다시 봤다.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일을 관둔 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지만 절차와 서류에 얽매인 관료주의에 좌절한다. 그의 친구인 싱글맘 케이티는 저소득층에게 식료품을 나눠 주는 푸드뱅크에서 허기를 못 이겨 통조림을 뜯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참함에 오열한다.

다니엘의 좌절에선 사회 안전망의 허점을 본다. 복지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한 기준도 지나치게 엄격하고, 그나마 건강하지 못하면 어디 재취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설픈 도움이 자존감을 할퀴어 더 깊은 상처를 남길 때도 있다. 두 사람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건 갑작스레 닥친 질병과 가난보다 이를 방치하다시피 한 사회인지도 모른다.

책은 실제 사례를 통해 정부와 사회, 공동체의 역할을 묻는다. 흔히 건강은 개인의 문제로 여기곤 하지만 저자는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찾아 들어간다. 질병의 원인은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런 그물망을 만든 ‘거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사회역학’이 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사례들도 흥미롭다. 미국에서 진행된 금연 프로그램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노력을 함께 기울인 곳일수록 금연에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안전에 대한 불안 등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금연이 힘들기 때문이다. 차별 경험을 솔직하게 얘기한 다문화가정 청소년이나 여성 노동자보다 이를 드러내지 않는 집단에서 우울증 발생 빈도가 훨씬 높았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몸이 고스란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정부나 공동체의 책임이 어디까지라고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다. 관점에 따라선 과도한 개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책 말미에 언급된 미국의 로세토 마을처럼 공동체 복원이 모든 지역과 사회에서 정답이 될 수도 없다. 다만 가난하거나 소수자라는 이유로 질병의 무게가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큼은 누구나 공감할 법하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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