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우영]고민과 탐구가 없는 우리의 大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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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직업훈련기관 찾는 명문대 졸업생 늘어나… 고민없이 대학에 간 뒤 뒤늦게 꿈을 찾아가는 과정
이스라엘에선 고교 졸업하고 대부분 1년간 해외경험한 뒤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 결정
1년의 유예기간 갖더라도 대학 진학과 직업을 두고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때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수시모집으로 대학입시가 시작되었다. 정시까지 3개월여, 예비합격자의 이동과 추가합격자 발표까지 합치면 5개월여 가까운 대장정이다.

올해 수시모집 비중은 예년에 비해 가장 높은 74%이고, 그중 86%가 학생부 종합전형 중심이다. 수시전형에서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에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자료 중 세칭 ‘자소서’라 불리는 자기소개서가 있다. 자소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의 취지와 부합되어 학생의 학습 행동의 동기나 과정을 통한 학업 성취 결과뿐만 아니라 성장 가능성, 잠재력 및 적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보면 많은 학생이 자소서 쓰기를 어려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는 주요 대학의 자소서 자율문항인 ‘지원 동기 및 진로를 위한 노력’을 기술하라는 항목에서 두드러진다.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간직하고 가꾸어온 꿈과 미래 진로를 향해 자신이 기울인 경험과 열정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이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직업을 탐구하고 체험하면서 직업 정신을 습득하고 일을 통한 노동의 가치를 깨달을 기회가 적다 보니 삶의 가치와 진로 선택에 혼선을 겪고 있다. 매년 입시 때마다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긴 안목으로 일의 세계가 어떠한지, 어떠한 능력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능력을 갖출지 함께 고민하며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전국 규모의 청소년 대상 ‘미래 내 모습 그리기 대회’가 있다. 전년도에는 1만8000여 점이 출품되었는데, 미래 직업을 주제로 개최되는 전국 유일의 대회이다. 그리기 대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일반화하여 결론을 지을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 희망 직업이 공무원, 교사 같은 전통적인 직업군에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직업들, 예를 들면 로봇동물 수의사, 스마트팜 농부, 반려견 행동전문가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교육은 건전한 시민의식의 함양과 함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 즉, 상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계층 간의 이동은 소위 크리덴셜리즘이라 불리는 학력 또는 학벌주의의 고착화를 불러왔다.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청년들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이다.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노동인구의 75%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들은 사고방식과 행동이 다르고 학력주의에서 더욱 자유롭다. 노동의 목적은 돈이 아닌 즐거움과 가치를 통한 행복 추구이고,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폴리텍대학은 전 국민 대상의 공공 직업훈련기관이다.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은 폴리텍대 입학생의 약 46%가 타 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 중에 유턴하여 새로운 진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특히 작년 초 문을 연 융합기술교육원은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과정 위주로 교육하며, 훈련생들은 10개월의 강도 높은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첨단 기업들로 진출하고 있다. 상당수 훈련생이 세칭 명문대를 비롯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이고 이 중 50% 이상이 인문계 출신자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극심한 취업난과 함께, 늦었지만 스스로의 적성을 찾아가며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는 용기 있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 전 청년 벤처창업 강국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청년들은 남녀 모두 군복무 의무를 지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입대한다. 제대 후에는 대부분 청년들이 1년 이상 해외 경험을 하면서 인생의 비전과 진로를 위한 체험의 여정을 거쳐 대학 진학이나 사회 진출을 결정한다. 우리 청년들에게도 1년여의 유예 기간을 갖더라도 체험을 통한 삶의 가치관과 진로, 그리고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평생학습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대학의 기능도 변화되어야 한다.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으로서의 기능도 유지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생애주기에 적합한 평생 능력개발을 선도하는 역할도 하여야 한다.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의 미래 예측이 새롭다. “2030년이면 현존 대학의 절반은 도산할 것이며, 앞으로 생애 네 번 이상의 직업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평생 직업훈련 시대에는 대부분의 대학이 ‘마이크로 칼리지’로 변화될 것이다.”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수시모집#대학입시#학생부 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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