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평양의 미국 적개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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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쏜 다음 날인 16일 CNN 방송이 북한 주민의 근황을 담은 ‘미지의 국가: 북한 속으로’라는 1시간짜리 특별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취재팀 3명은 지난여름 15일간 평양과 미사일 발사지인 원산, 비무장지대(DMZ), 백두산까지 화면에 담았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드러냈다. 소년들은 전자오락 속 적을 “미국놈들”이라 했고 ‘내가 미국인이면 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큰소리로 “네”라고 했다. 이들은 “미국이 우리를 학살했고 생매장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미사일 발사에 통쾌하고 긍지를 느낀다. 우리 방위를 위한 건데 왜 미국이 제재하느냐”고 따졌고, 여성 농부는 “미국이 어떻게 생겼길래 우리를 괴롭히는지 직접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순박한 주민들이 하나같이 미국에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고 미국인 기자는 전했다. 방송을 보는 내내 평양 주민들의 삶을 찍은 영화 ‘태양 아래’를 만든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말이 겹쳐졌다. “북에서는 인간적인 리액션(반응)이 존재하지 않았다. 평양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주민들의 인터뷰는 핵개발에 대한 인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보여주고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평양 마천루와 스마트폰 매장을 보여줄 때는 ‘김정은 체제’를 선전하려는 의도가 짙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긴장이 높아가는 시기에 이런 취재를 허락한 것 자체가 제재에 따른 조바심과 선제공격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대북 인도 지원을 밝힌 후에도 북은 16일 “‘대화와 압박의 병행이니 뭐니’ 하는 건 황당한 궤변”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내부적으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조작된 공포심을 주민들에게 조직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독재자는 목숨이 위태롭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양보한다는데 핵과 미사일을 손에 쥔 김정은이 진짜 공포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카드가 우리에게 있는지 걱정스럽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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