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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다산의 가르침 “몸이 집이면 정신은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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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다산의 가르침 “몸이 집이면 정신은 주인”

조종엽기자 입력 2017-09-16 03:00수정 2017-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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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증언첩/정민 지음/636쪽·5만2000원/휴머니스트
◇다산의 제자 교육법/정민 지음/316쪽·1만5000원/휴머니스트
다산 정약용이 1813∼1814년경 다산초당의 제자들에게 훈계 삼아 내려준 친필로 벼슬과 권세의 무상함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강진으로 귀양 온 다산이 1801년 주막집 뒷방에 연 서당 사의재(四宜齋). 휴머니스트 제공
“사람이 천지 사이를 살아가는 것은 문득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여관 가운데서 지내면서 꼼꼼하게 갖추어진 집을 구하는 것과 같아서, 그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을 사람이 없다. 돌아보건대 아등바등 애를 써서 오직 입고 먹는 것만을 위해 애쓴다면 또한 슬프지 않겠는가.”

조선 최고의 학자로 손꼽히는 다산 정약용이 1810년 유배 중 해남 사람 천경문에게 써서 준 ‘증언(贈言)’이다. 글은 배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증언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려주는 가르침의 글이다.

한양대 교수로 다산 전문가인 저자가 다산의 증언을 모아 번역과 해설을 달았다. “안영과 전문은 모두 몸집이 왜소하고 비루해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직간으로 임금을 바로잡고 기절을 숭상하여 세상에 이름났다.… 몸이 집이라면 정신은 주인과 같다.”

다산이 1818년 체구가 작은 15세의 제자 윤종진에게 준 글이다. 다산은 외모는 보잘것없지만 큰일을 한 위인들을 꼽으며 독려한다. 이처럼 제자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가르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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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강진에서 서당을 처음 연 뒤 맞은 제자 황상(1788∼1870)에게 내린 가르침은 또 어떤가. 배움을 시작한 7세 제자가 ‘저처럼 아둔하고 꽉 막힌 사람도 정말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외우는 데 민첩하면 소홀해지고, 글짓기에 날래면 들뜨고,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칠어지는 폐단이 있다”며 “너는 그런 병통이 없으니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답을 내린다. 이른바 ‘삼근계(三勤戒)’로 널리 알려진 증언 ‘증산석(贈山石)’이다.

제자들은 증언을 곁에 두고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10대 초반 다산초당에서 배운 제자 윤종민은 스승이 준 글을 읽고 또 읽어서 통째로 외웠다. 그리고 1868년 70세가 된 어느 날 이를 작정하고 종이에 적었다. 다산의 글 원본도, 윤종민이 쓴 원본도 남아 있지 않지만 윤종민의 후손이 이를 다시 옮겨 적은 사본이 전한다. “흉년으로 농부들은 밥 먹기조차 어렵고 나쁜 병마저 번져서 열에 일곱 여덟이 죽었다.…하늘 또한 어질지 않은 존재이다.…마음으로 빌고 또 빈다.”

농경사회를 살았던 다산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같지 않으므로 증언은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속뜻을 읽어야 한다. 사제의 인연과 함께 200년을 넘어 내려오는, 대학자의 가르침이 참 귀하다. 책을 읽다 보면 다소 엉뚱하게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라)’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저자는 어떤 흐린 복사본 자료는 4, 5년간 틈날 때마다 한 글자씩 읽어서 마침내 모두 해독해 냈다고 한다. ‘다산 증언첩’은 지금까지 발견된 증언 모두를 담은 소장판이고 ‘다산의 제자 교육법’은 보급판이다. 소장판은 두껍고 무겁지만 증언의 앞뒤 맥락을 자세히 알 수 있어 더 흥미롭다. 보급판은 설명이 간단해 증언의 진의를 이해하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다산 증언첩#다산의 제자 교육법#정민#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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