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방랑 10년… ‘2人의 돈키호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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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투어 마친 밴드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의 목박(드럼, 보컬·왼쪽)과 기도후(기타, 보컬).
전국비둘기연합의 목박(드럼, 보컬·왼쪽)과 기도후(기타, 보컬).
“2006년 겨울 어느 날, 회색 하늘이 진눈깨비를 쏟아붓는데 전국의 모든 비둘기가 모여 비듬을 떨어뜨리는 듯했어요. ‘전국, 비둘기, 연합…?’ 이거다!”(기도후)

밴드 ‘전국비둘기연합’(이하 전비연)이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이름만 보면 멤버가 한 3만 명은 될 것 같지만 실은 두 명뿐. 기도후(가명·29·기타 겸 보컬)와 목박(가명·28·드럼 겸 보컬)이다. 둥지는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시장의 풍년떡집 옆이었다. 최근 찾아간 이들의 연습실은 시장 한가운데 노래방과 보살집이 있는 건물의 2층이다. 월세가 싸서 택한 곳에 생선 냄새,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넘어든다.

헤비메탈, 포스트록, 펑크록을 교배한 전비연의 무대는 영화 ‘매드맥스’의 2인극 버전 같다. 폭발적 절경(絶景). 기타와 드럼, 딱 두 대의 악기가 날카롭고 육중한 사운드를 쇠로 된 진눈깨비처럼 살포한다. 단번에 각인되는 멜로디. 톱니처럼 철컹대는 굉음. 인류 마지막 날인 양 고개와 팔을 휘젓는 격한 무대매너. 기도후는 전기기타의 신호를 둘로 나눠 하나는 베이스기타용 앰프로 출력시킨다. 8개의 이펙터를 제어하며 저음의 공백, 2인조의 한계를 메운다.

올해 낸 3집 ‘Hero’에 이들은 가상영웅 ‘피죤맨’(비둘기인간)을 등장시켰다. 음반 속지에서 피죤맨은 불타는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섰다. 그가 양손을 포개니 배트맨의 박쥐 대신 비둘기 모양이 만들어진다.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브이록스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밴드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 제공
지난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브이록스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밴드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 제공
둘은 최근 전국투어 ‘도라이바’를 마쳤다. 인생은 나사가 풀려야 재밌다는 것. 광주, 전주, 대전, 부산, 대구, 강릉을 돌며 직접 구상해 만든 칵테일 ‘도라이밤’을 관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소주, 사이다, 박카스, 사과주스, 쭈쭈바, 복숭아 통조림, 요구르트 젤리…’ 기도후가 어렵게 공개한 레시피다. 무료입장, 자율기부가 원칙. 강원 강릉에서 50대 관객이 50만 원을 쾌척한 날, 관객이 2명뿐인 날 모두 최선을 다했다. 투어 뒤엔 경기 이천의 지산 밸리록, 러시아의 브이록스 페스티벌에 차례로 출연했다.

푸드덕. 전비연은 내친김에 종합예술집단 ‘999’를 2주 전 발족했다. “구구구…, 비둘기 울음소리. 9라는 게 의미심장한 숫자이기도….” 사진가, 작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비둘기 떼처럼 모여 9명 편제다. 기타와 드럼을 로시난테 삼은 두 사람은 서울 돈키호테의 방랑을 계속한다. “피죤맨 주연의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기도후) “전국 16개 해수욕장 윙카(적재함이 날개처럼 열리는 화물차) 투어 구상 중.”

둘의 20대를 송두리째 제물 삼은 가난한 록, 왜 놓지 않을까. “불태울 수 있으니까.” 젊음과 로큰롤에 패배란 없는 걸까. 둘은 서울 마포구 ‘채널1969’에서 ‘구구가요열창’(가제) 콘서트를 연다. 일시는 9월 9일 (오후) 9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전국비둘기연합 밴드#전비연#피죤맨#전국투어 도라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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