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박성진 청문회, 이념보다 능력을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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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부 차장
허진석 산업부 차장
면접을 준비 중인 A 씨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동종 기업 고위직으로 스카우트를 제안 받아 응했는데,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도 업적은 있다’는 취지로 평가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A 씨를 스카우트하기로 한 기업 이사회에서 ‘어떻게 노무현 코드에 맞는 사람을 스카우트할 수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고, 아예 면접도 보러 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전해 듣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부당한 차별 없이 능력만 보고 인재를 뽑아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최종 학력이나 출신, 사진 등을 보지 않고 채용을 하는 것이다. A 씨를 둘러싼 논란은 그런 의미에서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는 여럿 있다. 계층 간 이동의 용이성, 많으면서도 고른 소득 분포, 높은 여성의 사회진출 비중, 사상과 언론의 자유, 관용성과 포용성 등이다. 우리는 이런 특성이 잘 갖춰진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며 쫓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특히 이런 지표들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의 회사는 ‘대한민국’이다. 노무현을 박정희로 바꿔치면 A 씨는 다름 아닌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다.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와 이승만의 긍정적인 면을 평가했다고 해서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박 후보자가 청문회감도 아니라며 펄쩍 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이라 어정쩡한 태도다. 자유한국당은 야당이면서도 자신들과 코드가 비슷하다고 여겨서인지 잠잠하다. 코드가 주요 판단 기준이어서 야기된 요상한 구도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이념 과잉에 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박 후보자의 임명 타당성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많은 국민이 바라는 ‘상식과 이성’에 관한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에서 짚어야 할 핵심은 이념을 둘러싼 이런 것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 분야는 이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다. 100대 국정과제에서 경제 부문은 대부분 ‘소득을 재분배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기조에 맞춰져 있는데, 중소벤처기업 분야만은 전략적 접근을 통해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성장 전략의 핵심인 셈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등 기존 5대 주력 산업에 대한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런데도 앞으로 100년, 200년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의 성과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격차가 여전한 가운데 추격자이던 중국은 이미 상당수 분야에서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 분야를 키우겠다는 것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미래 산업을 새로 만드는 ‘빅 픽처’의 영역이다. 독일의 강소(强小)기업들처럼 세계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관한 논란은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박 후보자는 ‘기술의 사업화’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기술 창업’이다. 세계에서 독보적인 기술로 기업을 만들면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복지 격차가 줄게 된다.

청문회는 11일 열린다. 그날 박 후보자의 코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힐 능력을 알고 싶다. 그를 내치려면 이념이나 종교가 아니라 능력과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양식(良識)이라고 생각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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