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알프스 풍미…디저트는 불타는 노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9월 1일 05시 45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곳에서 예상 밖의 음식을 만나면 그 느낌이 무척 강렬하다. 스위스 루체른의 필라투스 클룸(Pilatus Kulm) 산악리조트에서 만났던 저녁 정찬이 바로 그러했다. 유럽에서 스위스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다. 퐁듀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스위스 여행에서 솔직히 음식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다. 스위스 중부 루체른 호 서쪽에 있는 해발 2132m의 필라투스산을 찾은 것도 세계에서 가파른 경사를 자랑하는 산악열차(톱니바퀴식)와 알프스 전망, 그리고 예쁜 일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 묵게 된 필라투스 클룸 호텔의 명함에 ‘호텔스 앤 가스트로노믹(gastronomie·식도락)’이라고 적힌 것을 볼 때도 관광객에 대한 허세로 여겼다. 하지만 이날 저녁 만난 네 코스의 정찬은 ‘스위스도 꽤 재미있는 요리를 만드네’라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1루체른의 대표적인 지역맥주 에이치(Eich) 맥주. 184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현재는 하이네켄이 인수해 일부는 캐나다에서 병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1루체른의 대표적인 지역맥주 에이치(Eich) 맥주. 184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현재는 하이네켄이 인수해 일부는 캐나다에서 병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식전주 루체른 맥주 에이치 비어


루체른의 ‘동네 맥주’ 에이치 비어(Eich beer). 1834년 창업했으니 일단 연륜은 제법 됐다. 유럽은 조그만 동네에도 개성있는 풍미를 자랑하는 지역 맥주가 즐비해 호기롭게 시켰지만 평범했다. 맛은 제법 있지만 “이 동네 맥주는 이런 맛이네”라고 정의할 정도의 특징은 없었다. 나중에 구글에서 검색하면서 “하이네켄이 2008년 4월부터 소유하고 있고…”라는 내용을 보고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아뮤즈 부시로 나온 연어 무스. 연어 특유의 맛을 살리면서 부드러운 질감으로 입안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아뮤즈 부시로 나온 연어 무스. 연어 특유의 맛을 살리면서 부드러운 질감으로 입안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아뮤즈 부쉬 연어를 갈아 양념한 무스

에이치 맥주에서 살짝 실망했던 마음을 이 아뮤즈 부쉬가 달래주었다. 빛깔을 보면 마치 복숭아 소르베 같은데 연어를 곱게 갈아 양념을 한 일종의 무스였다. 대개 아뮤즈 부쉬가 본 코스 전 입맛을 돋구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데 이것은 그것을 넘어 코스의 본 요리와 맞먹는 인상을 주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베이컨 타르트. 리이크와 잘게 다진 베이컨이 계란파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네 빈대떡을 연상케 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에피타이저로 나온 베이컨 타르트. 리이크와 잘게 다진 베이컨이 계란파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네 빈대떡을 연상케 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에피타이저 베이컨과 리이크로 만든 타르트

아뮤즈 부쉬가 높여준 기대를 그대로 이어주었다. 파의 이웃사촌격인 리이크(leek)와 베이컨을 다져 계란에 섞어 타르트로 만들었다. 리이크의 식감이 부추나 파와 비슷한데다 베이컨이 들어가고 계란 반죽을 한 모양새가 얼핏 빈대떡을 연상케 했다. 대개 서양식에서 이런 요리들은 간이 센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우리 입맛에 딱 맞으면서도 재료들이 가진 풍미가 어우러져 꽤 풍성한 여운을 느끼게 했다.

레몬그래스를 넣은 닭고기 크림 스프. 동양적인 풍미를 자아내는 레몬그래스를 가미해 마치 태국 국물요리를 먹는 것 같은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 것이 신의 한수였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레몬그래스를 넣은 닭고기 크림 스프. 동양적인 풍미를 자아내는 레몬그래스를 가미해 마치 태국 국물요리를 먹는 것 같은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 것이 신의 한수였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두 번째 요리 닭고기 크림스프

두 번째 요리는 정식의 전형적인 코스인 스프. 잘게 다진 닭고기가 들어간 크림스프였다. 여기서 백미는 레몬그래스였다. 태국 요리에서 자주 접하는 레몬그래스는 향미가 무척 강한 허브인데, 이것을 스프에 가미하니 평범했던 닭고기 크림 스프가 동서양 퓨전의 색다른 맛으로 돌변했다.

메인요리로 나온 양갈비 구이와 가니시로 곁들인 고구마 퓨레와 껍질콩.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메인요리로 나온 양갈비 구이와 가니시로 곁들인 고구마 퓨레와 껍질콩.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메인 코스 고구마 퓨레 곁들인 양갈비

메인 코스는 양갈비(램)와 생선 중 선택. 낙농과 목축을 자랑하는 스위스의 저녁인데, 웬 생선이냐 생각해 양갈비구이를 골랐다. 어린양(램)답게 잡내도 없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육질이었지만 기막히다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소 평범한 양갈비를 살려준 것은 얼핏 당근을 갈은 것처럼 보였던 고구마 퓨레, 육두구(넛맥)를 넣은 소스, 그리고 잘 구은 파의 식감을 연상케 하는 콩줄기였다.

디저트로 나온 사과 바질 소르베와 자두 머핀. 사과와 바질이 어우러져 여운이 긴 청량감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디저트로 나온 사과 바질 소르베와 자두 머핀. 사과와 바질이 어우러져 여운이 긴 청량감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필라투스(스위스)|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디저트 바질과 사과가 만난 소르베

디저트는 과일 소르베와 자주 머핀이 나왔다. 푸른 소르베의 모습이 꽤 강렬했는데, 비주얼만큼 맛도 개성이 넘쳤다. 입안 가득 들어오는 청량하고 산뜻한 맛이 일품이었다. 사과와 바질을 섞었다고 한다. 생선요리나 파스타의 토마토 소스에 바질을 사용하는 것은 자주 봤지만, 사과와의 궁합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필라투스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필라투스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에필로그 필라투스의 명물 일몰

아뮤즈 부쉬를 포함해도 5코스에 불과했지만 식사시간은 2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손님들이 자주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통에 코스 진행이 수시로 멈췄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석이 잦았던 것은 저녁 시간이 명물이라는 필라투스의 일몰과 겹쳤기 때문. 기자도 두 번이나 자리를 비우고 밖으로 나갔다. 식사 중간에 나가 바람부는 정상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지만 환상적인 일몰에 취했다가 다시 돌아와 맛보는 애플·바질 소르베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글·사진 필라투스(스위스) |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