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요즘 외롭다는 한국 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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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내우외환(內憂外患).’ 요즘 한국 기업들의 상황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안팎으로 샌드백 신세다. 먼저 외환. 진원지는 중국이다.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가면서 한국 기업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가의 요청에 따라 사드 부지를 내준 롯데가 첫 번째 희생타다.

롯데마트는 중국 내 99개 매장 중 87개 매장이 여전히 문을 닫은 상태다. 나머지 12곳도 간혹 한국 교민들이 들를 뿐 파리만 날리고 있다. 3월 이후 매출 피해액만 5000억 원이 넘고 그 외에도 현지 직원 인건비, 임차료 등으로 매달 150억∼200억 원이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연말쯤이면 피해 규모가 1조 원을 훌쩍 넘길 거라고 한다. 롯데그룹 내부에서 “이럴 바엔 차라리 중국 사업을 철수하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마저도 선택권은 없다. 3조 원이 투입돼 짓고 있는 선양(瀋陽) 복합쇼핑몰 등 대형 사업들이 자칫 중국 정부의 ‘인질’이 될 수 있어서다.

급기야 현대자동차 중국 생산라인까지 멈춰 섰다. 중국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에 그냥 하나의 시장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해 온 시장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15년간 중국에 공장을 합쳐서 8개나 세운 이유다. 생산라인이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현대차 임원에게 전화하자 “중국에서 정말 힘들다. 그래도 한 해 200만 대 팔던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현대차와 동반 진출한 부품기업들도 ‘악’ 소리를 내고 있다. 대금을 못 받았다고 곧바로 납품을 중단한 프랑스 부품기업과는 사정이 다르다. 가동 중단 사태가 닷새 만에 정상화됐다지만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어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데 정부는 ‘나 몰라라’ 식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취임 한 달이 지나도록 사드 사태와 관련된 기업들과 단 한 차례도 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무뎌진 게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라고 이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도 관심을 보이고 안 보이고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많은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위로해줄 것이란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밖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데 안에서까지 터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압박, 채용 확대 압박,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을 앞세운 군기 잡기 등 기업들은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시범 케이스’로 찍힐까봐 말 한마디 못 한다.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경제단체들까지 바짝 얼어 있다.

아이를 키울 때 집에서 기를 살려야 밖에 나가 친구도 잘 사귀고 공부도 잘한다고 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기를 살려야 해외 무대에서 어깨를 펴고 글로벌 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 현실은 반대인 것 같다. 엊그제 한 기업인은 “요즘 기업들이 많이 외롭다”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안방에서마저 미운 오리 새끼로 내몰리는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무슨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한숨이었다.

외교 문제가 있다고 기업을 볼모로 치졸하게 보복하는 ‘소인배’ 중국도 갑갑하지만 기업인들을 외롭게 하는 우리 정부도 과연 옳은 길만 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개혁의 완급은 적절한지, 목표가 수단을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부작용은 없는지 한 번 돌아봤으면 한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내우외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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