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를 달라는데 A를 주고 싶었다” 뮤지컬 이블데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30일 16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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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쇼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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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뮤지컬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스토리도,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도, 하다못해 분장도 다 B급을 지향한다. 유치함이 추하지 않고, 과장이 오히려 권장된다.

이블데드는 “우하하! 뭐 저래”하며 보는 작품이다. 이 흥미로운 작품이 9년 만에 돌아왔다는 것이 서운할 정도다. 친구라면 뒤통수를 한 대 쳤을 것이다.

왜 뮤지컬이 B급인가 하면, 원작인 영화가 B급 저예산 공포영화이기 때문이다. 공포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원작의 매력이 뮤지컬에도 고스란히 이식됐다.

초연부터 함께 한 임철형 연출이 다시 한 번 연출봉을 잡았다. 이블데드를 세포 하나하나 속속들이 알고 있는 연출이다. 이블데드에 관한 한 임철형이 아닌 다른 연출가를 상상하기 힘들다.

이블데드를 온 몸으로 즐기고 싶다면 앞쪽 스플레터석을 권하고 싶다. 극의 중간쯤 되면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객석으로 내려와 시뻘건 피를 뿌리고 다닌다. 입구에서 직원이 우비를 나누어주지만 골수팬들은 옷에 고스란히 피를 맞는 걸 즐기기도 한다. 피범벅이 된 셔츠는 꽤 괜찮은 기념품이 될 것 같다.

이런 작품은 배우들의 개인기가 중요하다. 초연에서는 류정한, 조정석, 정상훈, 양준모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조정석과 정상훈은 팬미팅 등의 자리에서 이블데드의 넘버인 ‘조낸 황당해’를 즐겨 부른다고 한다.

스캇 역의 우찬이 좋았다. 능글능글한 데다 꽤 밝히는 남자인 스캇을 흥미롭게 연기했다. 알타보이즈, 난쟁이들, 젊음의 행진 등에 출연했던 배우인데 작 품마다 눈을 끄는 배우다. 이번 시즌에는 조권과 스캇을 나눠 맡았다.

린다 역의 정가희는 청순하고 완벽한 신붓감에서 좀비로의 극단적인 점프연기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입천장이 델 듯 뜨거운 라면국물을 대접째 들고 마시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정가희란 배우의 변신을 볼 수 있다.
9월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하니 “슬슬 이제 한번 보러갈까”하는 분들은 조금 서두르시길.

유쾌한 공포가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묶어 지하 창고에 처박아 버리는 듯한 뮤지컬. 이런 작품은 역시 여름이 끝나기 전에 봐 주어야 제격이다.

자꾸만 B를 달라는데 A를 주고 싶어졌다. 이런 경우는 제법 난감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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