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선향 교사의 ‘아하,클래식’]봄은 경쾌, 여름은 격렬… 사계절 연주한 ‘四季’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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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사계절의 풍경-감성 등 묘사해…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어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
우리나라 기후는 갈수록 무더워지는 여름과 짧아진 겨울, 살짝 건너가는 봄과 가을로 인해 아열대 기후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변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길고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온다는 계절의 섭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계절과 날씨는 화가나 작곡가 같은 예술가에게 특별히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계절과 관련된 예술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들 것입니다.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성당에 소속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15세에 음악학교가 아닌 신학교에 입학해 25세에 가톨릭 사제품을 받아 신부(神父)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해 사제로서 미사를 집전할 수 없게 되자 ‘피에타’라는 여자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의 음악교사로 임명되었는데, 비발디가 지휘하는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는 베네치아 사람들 사이에서 금세 유명해졌고 베네치아에 오면 비발디 연주회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답니다.

밝은 금빛 머리색을 지녔던 비발디는 당시 ‘빨간 머리 사제’라고 불리며 유럽 전체에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발디 ‘사계’ 연주를 통해 유명해진 ‘이무지치’ 합주단의 앨범 재킷.
비발디 ‘사계’ 연주를 통해 유명해진 ‘이무지치’ 합주단의 앨범 재킷.

  
○ ‘사계’는 독립된 곡이 아니다?

사실 사계는 따로 작곡된 작품이 아닙니다. 비발디가 가장 많이 작곡한 음악 장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조화의 영감 Op.3’이라는 제목의 바이올린 협주곡집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화성과 창의의 시도 Op.8’의 총 12개 곡 중 앞 4개 작품 즉, 1번부터 4번까지의 곡을 묶어 1번 봄, 2번 여름, 3번 가을, 4번 겨울(각각 3악장씩 구성되어 전체 악장은 모두 12개 악장)을 ‘사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성과 창의의 시도’ 중 5번은 ‘바다의 폭풍’, 10번은 ‘사냥’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곡들이 곡의 특정 부분에서만 묘사적인 기법을 쓰며 제목을 암시한다면, ‘사계’는 각 곡의 악장마다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트(Sonnet)라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정형시로 설명을 합니다.

이 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분위기를 표현하며 각각의 악장에서 일관된 분위기로 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악장에 붙어 있는 소네트는 작가가 따로 적혀 있지 않고 그다지 뛰어난 시라고 할 수도 없지만, 사계절의 정경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음악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림1〉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된 ‘봄’ 1악장. 악보 출처 HSCC MUSIC, Piano Sheet Music
〈그림1〉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된 ‘봄’ 1악장. 악보 출처 HSCC MUSIC, Piano Sheet Music
지면이라 음악을 함께 듣지 못해 아쉽지만 이미 ‘사계’ 하면 경쾌한 느낌의 ‘봄’ 1악장<그림1>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봄’ 1악장은 바이올린의 트릴(trill·연속된 음을 위아래로 빠르게 연주하는 주법)과 짧고 빠른 음형으로 새들의 지저귐을 묘사하는데, 설명해 놓은 소네트를 보지 않고도 봄의 상쾌함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사계’ 중 봄을 설명한 소네트를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봄’

1악장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시냇물은 산들바람에 실려 흘러간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새들이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2악장

여기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초원에 나뭇잎들이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다.

3악장

요정과 양치기들은 전원풍의 무곡에 맞춰 춤을 춘다.
이 눈부신 봄날에.
 
〈그림2〉 ‘여름’의 하이라이트 3악장.
〈그림2〉 ‘여름’의 하이라이트 3악장.
2번 ‘여름’은 밝은 느낌의 ‘봄’에 비해 단조의 조성으로 어두운 느낌이 강하며, 숨 막히는 더위를 표현하는 듯 바이올린이 쉼표와 음표를 교대로 사용하고 하행하는 음형을 쓰면서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여름’의 하이라이트는 3악장<그림2>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름의 격렬한 태풍, 장마, 천둥의 느낌을 프레스토(Presto·아주 빠르게)로 격렬하고 강하게 표현합니다.

3번 ‘가을’은 농부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표현하는 듯 다시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가을’을 설명하는 시에 나온 대로 ‘마을 사람들의 춤과 노래’를 전체 악기의 꽉 찬 음향과 흥겨운 8분 음표 리듬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축제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4번 ‘겨울’은 다시 단조로 바뀌어 겨울의 극심한 추위와 살을 에는 듯 차가운 바람을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향과 불협화음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2악장에서는 따뜻한 방에서 불을 쬐는 듯 아름답고 편안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이 악장은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이라는 1990년대 우리 가요에도 샘플링(sampling·저작권을 갖춘 음악의 일부분을 녹음하거나 편집하여 재사용하는 것)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에 이어 3악장 마지막에는 2번 ‘여름’에 나왔던 주제 선율이 변형되어 사용되면서, 마치 겨울이 지나면 다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비발디 이후에도 사계절과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작곡한 곡들은 많지만, 사계절의 정경과 풍경, 사람들의 모습과 감성을 이처럼 다채롭게 묘사한 곡은 없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비발디의 ‘사계’를 찾고 있는 것이랍니다.

자, 우리도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김선향 선화예고 교사
#비발디 사계#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이무지치 합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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