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도발당일 기종 단정 안했지만… 靑, NSC뒤 “방사포” 발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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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에 뒤집힌 北발사체

부처 핵심정책 토의 앞두고 대화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방부, 국가보훈처 핵심 정책 토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경두 합참의장, 문 대통령,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상철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송영무
 국방부 장관.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부처 핵심정책 토의 앞두고 대화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방부, 국가보훈처 핵심 정책 토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정경두 합참의장, 문 대통령,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상철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송영무 국방부 장관.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북한이 26일 동해상으로 쏜 단거리발사체의 실체 평가가 번복된 데 대해 군 당국은 ‘초기 데이터’ 분석 과정의 한계라고 28일 해명했다. 우리 군의 탐지전력(레이더 등)에 포착된 북한 발사체의 비행거리와 최대 비행고도, 발사각도 등으로 분석된 초기 평가는 미 측 감시전력(정찰위성 등)이 수집한 관련 정보의 보완 작업을 거쳐 추후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석연찮은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도발 당일 군은 북한 발사체의 비행거리와 비행고도를 근거로 300mm 방사포(대구경다연장로켓)에 가장 근접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를 단정해서 밝히지 않았다. 비행궤도로 보면 방사포로 추정되지만 비행 속도가 스커드-B급(음속의 4, 5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발사체의 기종을 속단할 경우 북한의 도발 의미와 전술적 의도를 규명하는 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군은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청와대에도 애초에 300mm 방사포 등 다양한 발사체로 추정된다고 보고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도발 직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뒤 서면 브리핑에서 ‘300mm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당초 브리핑 내용에는 ‘방사포’라는 대목이 없었지만 국가안보실의 요청으로 관련 문구를 추가로 포함해 재배포한 것이다. 이어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도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개량된 300mm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미 태평양사령부와 러시아 당국 등은 탄도미사일에 계속 무게를 두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서둘러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단정해 발표하는 바람에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과의 대북 정보공유 및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짚어볼 대목이다. 군은 청와대의 ‘방사포 추정’ 발표 이전에 한미 간 관련 협의가 있었다고 28일 설명했다. 하지만 그간의 전례를 볼 때 이런 해명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북한의 미사일·방사포 도발 때마다 한미 양국은 그 실체를 판단하는 데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로 판단이 다르면 공동 평가를 거쳐 최종 결론에 합의할 때까지 한쪽이 단정해서 발표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한미 간 공동 합의를 해도 일부 불일치하는 대목이 있으면 사안의 민감성과 대북 역정보 사태를 고려해 언론 등에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군 고위 소식통은 “한미 간 대북정보 이견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방사포 추정’ 발표를 미국이 수용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최근 북-미 간 대화 기류를 의식해 ‘저강도 도발’이란 점을 부각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번 도발을 빼고는 청와대가 국방부보다 먼저 북한이 쏜 발사체의 종류를 추정해서 발표한 적이 없다는 점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통상적인 대응훈련 차원으로 보고 있다”는 청와대의 후속 발표도 북한의 도발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발사체가 단거리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28일 국방부 발표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 태평양사령부도 처음엔 미사일 3발이 모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가 나중에 2발은 성공한 것으로 수정했다”면서 초기 판단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의도적으로 북한의 도발 위협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청와대는 남측을 겨냥한 북한의 직접 위협에 규탄성명 없이 대화 국면 전환을 강조한 것에 대해선 판단의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어찌 됐든 저강도 도발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단거리미사일이든, 방사포든 군이나 우리 정부에 미치는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이 선군절(25일)에 특수부대와 육해공 화력을 대거 동원한 서북도서 강점훈련을 참관하며 ‘서울 평정’을 위협한 다음 날 단거리발사체 도발까지 감행한 전략적 배경과 의도를 청와대가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문병기 기자
#북한#미사일#방사포#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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