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료진 지나치기 쉬운 ‘정상수치 이상’, AI는 콕 집어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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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급성신장손상자 임상서 AI 효과 입증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은 김모 씨(60). 수술 뒤 급성신장손상이 발생했다. 수술 직후 혈액검사에서 신장 기능 수치는 dL당 1mg으로 정상(1.4mg 이하)이었다. 만약 이 수치만 보고 퇴원이 결정됐다면 김 씨는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개발한 ‘급성신장손상 감시 인공지능(AI) 시스템’ 덕분에 김 씨는 곧바로 추가 치료를 받았다. 이 시스템이 김 씨의 신장 수치는 정상이지만 주치의에게 급성신장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AI 시스템이 김 씨의 6개월간 혈액검사 결과를 분석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급성신장손상 환자를 상대로 국내 처음으로 AI 기술을 도입해 임상에 활용한 결과 치료 회복 가능성이 70%나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컴퓨터가 환자의 신장 기능 상태를 파악해 의료진에 알려주고, 그에 따른 치료 효과를 측정한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세중 진호준 교수팀은 2014년 6월 병원 의료정보팀과 함께 ‘급성신장손상 감시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두 교수팀은 AI 시스템 도입 이전인 2013년 1월부터 1년간 찾아온 입원 환자 2만1554명과 시스템 도입 뒤 2014년 6월부터 1년간 찾아온 입원 환자 2만5000여 명을 분석했다.

이들 입원 환자 중 AI 시스템 도입 전 급성신장손상이 발생한 환자(1884명)와 도입 이후 환자(1309명)의 주요 지표를 분석한 결과 시스템 도입 이후 신속 치료가 이뤄진 환자가 4.29배 늘었다. 또 급성신장손상의 회복 가능성은 70%나 높아졌다. 반면 급성신장손상이 상당히 진행돼 투석을 요구하는 중증 신장 손상을 유발할 위험은 시스템 도입 이후 14% 감소했다.

이 AI 시스템은 환자의 최근 6개월간 혈액검사 수치를 분석해 입원 후 신장 기능이 악화되는 즉시 감시 알고리즘을 통해 자동으로 급성신장손상을 진단하게 한다. 또 신장 손상 정도를 3단계로 분석해 주치의에게 바로 알려주고 신장내과 협진까지 연계시켜 준다. 급성신장손상은 신장 세포가 손상돼 신장 기능이 약화되는 질환으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투석을 해야 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급성신장손상의 사망률은 50%에 이른다.

김세중 교수는 “기존엔 급성신장손상을 간과하지 않으려면 의사가 직접 환자의 이전 신장 기능 검사 결과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며 “이 때문에 환자의 신장 기능 악화를 조기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연간 입원 환자가 40만여 명에 달해 과거 검사 결과 대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AI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입원 환자 전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AI를 질환 진단에 활용하면 병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 치료 시기를 놓치는 위험이 줄어들고 의료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대학병원들이 의료용 AI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뷰노 등 국내외 소프트웨어 업체와 함께 초음파 및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대장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뇌파를 이용해 뇌전증 발생 지점을 예측하는 알고리즘도 설계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진료과별로 각기 다른 환자의 입력 정보를 통일해 조기 진단 및 치료에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선보일 예정이다.

연세의료원은 아토피와 당뇨병, 수면장애 등을 진단하거나 치료법을 제안하는 소프트웨어를 100건 이상 개발한다는 목표로 ‘한국형 왓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의료용 AI 개발은 주로 진단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이미 구글의 ‘텐서플로’처럼 무료로 공개돼 누구나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다. 또 슈퍼컴퓨터급의 서버를 아마존 등으로부터 대여해 사용할 수도 있다.

핵심은 양질의 의료용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다. 국내 병·의원은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개방성이 낮아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대한의료정보학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관건은 데이터”라며 “의료용 AI가 발전하려면 표준화된 환자 데이터를 충분히 쌓아 활용할 수 있도록 법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AI 시스템은 초기 단계인 진단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수준”이라며 “앞으로 입원 환자의 신장 손상을 미리 예측하고 맞춤형 치료 지침을 해당 의사에게 자동으로 알려주는 단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신장 분야의 최고 학술지인 ‘미국 신장질환 저널(American Journal of Kidney Diseases)’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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