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숨죽이는 기업, 경제단체라도 할 말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0시 01분


코멘트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세계 경제가 동반 호조세를 보인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눈부신 실적 향상에 낮은 금리, 풍부한 유동성, 달러 약세를 타고 세계 교역과 투자가 반등하고 있다. 재정 위기에 허덕이던 남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유럽도 잠재성장률을 넘는 성장세가 예상되고,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고용 확대가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한국은 여전히 ‘경제 위기’다. 한국은행은 어제 현안 보고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과 추경에 힘입어 2%대 후반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은 높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새 정부 출범 후 반짝 했던 ‘허니문 경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옥죄는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러다 한국만 글로벌 호황 흐름에서 뒤처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제는 심리다. 정부와 기업, 모든 경제주체가 희망을 갖고 경제 활동에 매진하면 시장 박동이 달라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 기업들은 정부와의 동반자 관계가 깨지고 있다며 냉가슴을 앓고 있다. 10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통상임금 확대 시 생산시설 해외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냈다가 정부 눈총에 반나절도 안 돼 ‘해외 이전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해명자료를 내야 했다. 통상임금 문제 등 쟁점에 대해 기업은 입도 벙긋 못하게 되면서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만 받고 있는 권위주의적, 수직적 관계다. 재계가 침묵하는 사이 노동계만 파업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통창구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이다. 5월 경총은 김영배 부회장이 “새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추진 정책을 발표한 이후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는 입장을 내놨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받고 입을 닫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던 1월 ‘경영계의 입장’을 냈던 경총 등 재계단체는 지난주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침묵일 것이다.

기업의 목소리가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불통 정국의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현재 청와대 내 실세들은 과거 기업들이 기득권만 키웠다고 비판하며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양극화 해소가 중요한 과제이기는 해도 그 책임을 모두 기업으로 몰고 가다 시장경제가 위축되고 한국 경제는 가라앉을까 우려스럽다.

새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대한상의가 정부에 대해 내놓는 각종 건의와 공식 코멘트는 대선 직전 100일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경제에 영향을 주는 현안에 대해 기업의 대변인들이 입을 닫는 것은 직무유기다. 기업과 정부가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정부가 지향하는 공정한 경쟁도 가능해진다.
#기업#금융위기#경제위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