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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석호]‘김정은 무역상사’의 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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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석호]‘김정은 무역상사’의 외환위기

신석호 국제부장 입력 2017-08-28 03:00수정 2017-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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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이보라우들, 거저 개성공단에서 옷 만들었던 에미나이(젊은 여성을 뜻하는 북한 사투리)들 좀 날래 구해 오라우. 지금 달러 버는 길은 그것밖에 없디 않간?”

지난해 2월 공단이 폐쇄된 뒤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노출됐다’는 낙인이 찍혀 북한 전역으로 흩어졌던 개성공단 여공들이 지금은 북한 조선노동당과 인민군 등 권력기관의 ‘러브콜’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통과시킨 대북제재 결의 2371호가 북한의 모든 광물과 수산물 수출을 금지하면서 북한 권력기관들의 외화벌이 원천이 막히고 겨우 직물 임가공 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북한이 중국으로 수출한 물품 액수는 3억8520만 달러였다. 이 가운데 의류는 1억4750만 달러로 38%를 차지했다. 6800만 달러였던 수산물 수출은 이번 결의로 금지됐고 석탄 수출은 통계상으론 이미 2분기부터 중단됐다. 국제사회의 제재망이 강해질수록 합법적인 의류 수출 의존도는 더 커질 것이다. 경험 있는 방직 노동자들이 더 필요하고 개성공단 여공들이 김정은 체제 위협 세력인지를 따질 상황이 아닌 셈이다.


북한의 독특한 ‘수령경제’ 구조를 조금만 이해하면 최근 ‘외환위기’로 비상이 걸린 북한 권부의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생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축한 수령과 엘리트의 ‘호혜와 상납’ 관계를 말한다. 김정일은 말 잘 듣는 당과 군 간부들에게 광산과 바다 어장에서 광물과 수산물을 채취해 중국 등에 수출할 권한(이른바 ‘무역와크’)을 준다. 엘리트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달러의 일부를 김정일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조직을 굴리는 데 쓴다. 김정일 눈 밖에 나면 와크를 빼앗기므로 절대 충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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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이렇게 조달한 달러로 핵과 미사일도 만들고 선물 정치로 다른 엘리트들을 관리했다. 아들 김정은도 집권 이후 아버지의 ‘수령경제 장부’를 제일 먼저 챙겼을 것이 분명하다. 2012년 숙청된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2013년 사형당한 장성택 당 행정부장도 실은 ‘김정일이 수여한 무역와크’ 일부를 숨겨 달러를 착복하려다 변을 당했다는 해석도 있다. 고모부를 죽일 정도로 ‘달러 돈줄’이 중요했던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안보리 결의는 과거의 제재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한다. 달러를 주고받아야 유지되는 최고지도자와 엘리트의 천박한 관계를 실질적으로 교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경제의 달러화(dollarization) 현상을 간파한 미국과 국제사회는 올 초 세계 모든 은행을 통한 북한의 달러 거래마저 막아버린 상태다. 중국은 북한 기업의 합작 투자도 막았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50%를 넘고 밀무역을 합하면 한국의 70%보다 높을 수 있다”며 “특히 대외 경제가 내부 시장화와 맞물려 있어 이번 제재의 효과는 과거보다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최근 달러 거래의 뒷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북한 지도부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다. 지난주 미국 연방 검찰의 중국과 싱가포르 기업 1100만 달러 몰수 소장에서 드러난 돈세탁과 물물교환 방식이 대표적이다. 상대 기업이 요구하는 ‘리스크 프리미엄’ 때문에 북한이 지불해야 할 거래비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 여공을 찾고 있을 당과 군의 간부는 속으로 이렇게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어린 대장님! ‘수령 결사옹위’도 달러가 있어야 하지요! 날래 어케 좀 해주시라요!”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김정은 무역상사#북한 수령경제#김정일#북한 경제 대외 의존도#리스크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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