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퍼스트레이디가 넘지 말아야 할 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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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나와 내 남편은 함께 아침 식사를 합니다. 그때마다 내 주름과 남편의 싱싱함을 봅니다. 그게 우리 사랑의 방식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는 최근 패션잡지 ‘엘르’와 대선 이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편과의 스물네 살 나이 차에 대해서 이처럼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 건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취임 100일도 안 돼 남편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구원군’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도 마크롱보다 더 유명하다는 브리지트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핫’한 인물이다. 가판대에 호객용으로 내놓는 각종 잡지의 표지모델을 도맡을 정도로 최고의 셀럽이다. 대선 때도 ‘마크롱의 선생님’ 브리지트는 분명 마크롱 득표에 플러스였다. 고교 남학생과 여교사 간의 사랑으로 맺어진 ‘과한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20년 넘는 러브 스토리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기 때문이다.

사적인 애정 문제로 늘 시끄러웠던 전임자들도 마크롱 부부에겐 도움이 됐다. 직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재임 도중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애인에게 달려갔고 그 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이혼한 뒤 두 달 만에 모델 출신과 재혼했다. 벨트 밑 영역은 건드리지 않는 게 프랑스 정서라지만 이번만큼은 스캔들 없는 부부에 대한 염원이 있었다. 하지만 마크롱 부부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대통령 부인에게 ‘퍼스트레이디’라는 공식 직함을 주고 사무실과 직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 말을 실천하려 했을 뿐인데 3주 만에 30만 명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그들은 “우리는 대통령을 뽑은 것이지 부인을 뽑은 게 아니다”며 퍼스트레이디의 국정 개입 의도라고 비판했다.

되돌아보면 대선 전부터 조짐이 보였다. 마크롱 대선 캠프에서는 후보의 연설문, TV토론 등 주요 사안이 부인을 거쳐야만 결정된다는 불만이 흘러나왔었다. 문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회 분야 공약 수립은 브리지트가 직접 주도하기도 했다. ‘퍼스트레이디’ 직함 논란은 그런 의심의 눈초리에 불을 붙였다.

대통령의 부인은 남편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할 수 있는 사심 없는 참모다. 바쁜 남편 대신 소외받은 국민을 다독이기도 하고 집무실에 갇힌 남편에게 누구보다 가감 없이 여론의 쓴소리를 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퍼스트’ 권력으로 국정에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순간 넘지 말아야 할 ‘레드 라인’을 넘게 된다.

대선 때부터 별 인기가 없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는 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여름만 해도 35%였던 지지율은 지난달 51%까지 올랐다. 지난달 파리를 방문한 멜라니아는 어린이 전문 병원을 찾아 프랑스어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에펠탑 저녁 식사 자리에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 패션을 입고 나와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샀다. 그녀는 전 세계 테러와 재난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위로하고 있다. ‘마초’ 남편의 손을 뿌리치는 센스 역시 반대 여론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도 남편 재임 중 활발한 활동으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부인에 꼽히고 있다. 멜라니아도 미셸도 남편의 인사나 정책 결정에 개입하는 레드 라인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퍼스트 레이디#마크롱 선생님#브리지트#사심 없는 참모#멜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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