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선고 당일 사라진 잉락… 오빠처럼 해외로 도피한듯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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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출석 공언해놓고 안 나타나… 현지언론 “탁신 머무는 두바이行”
탁신도 2년형 선고받고 해외도피… 일각 “잉락, 군부 묵인아래 출국”
지지자들 “우리는 속았다” 분노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잉락 친나왓(50)이 집권 중 부정부패를 방치한 직무유기와 관련한 대법원 선고공판을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일부 언론은 잉락 전 총리가 태국을 빠져나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머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두바이는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활동 근거지다.

잉락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선고일인 25일에 법정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의 승소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며 공판 참석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2008년 2년형을 선고받은 뒤 해외로 도주한 탁신의 전철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지만 최대 징역 10년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 선고 공판 당일 그 역시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25일 잉락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사라지자 국경 지역 검문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재판은 다음 달 27일로 미뤄졌다. 대법원은 잉락이 불출석하더라도 궐석재판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은 친나왓 가문과 가까운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잉락의 구체적인 도주 행로까지 전하고 있다. 재판을 이틀 앞둔 23일 밤 태국 남부로 간 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경유해 두바이로 갔다는 것. 캄보디아를 경유했다는 설도 있다. 방콕포스트는 소식통을 인용해 잉락이 탁신처럼 니카라과 여권을 갖고 도피했다고 전했다.

한 소식통은 “탁신은 여동생의 탈출을 오랫동안 준비했다. 그는 동생이 단 하루라도 감옥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잉락의 최종 목적지는 두바이가 아니다. 아마도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추진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영국에는 탁신 소유의 재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군부의 의도적 묵인 또는 사전 합의된 도피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콕포스트는 “잉락이 권력자로부터 출국 허용 신호를 받았다”며 “치안 당국 모르게 도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군부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태국에선 잉락의 도피로 그의 지지 기반이던 페우타이당의 기반이 약해지고 군부 정권이 최소 7, 8년은 더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콕포스트는 1면에 ‘친나왓 시대 막 내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잉락이 끝까지 싸울 것으로 믿었지만 우리가 속았다”는 지지자들의 발언을 소개했다.

2011년 7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잉락은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고초를 겪었다. 군부는 2015년 그를 쌀 수매와 관련한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해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쌀 수매로 발생한 정부 손실 관련 민사소송에서 잉락에게 350억 밧(약 1조1840억 원) 벌금형을 선고하고 재산을 압류했다.

잉락은 2013년 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아시아 여성 리더십 개발을 위해 공동 노력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두 명 모두 탄핵돼 재판을 받고 있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8월 탄핵된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까지 포함하면 2010년대 전반기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 여성 지도자 모두 현재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셈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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