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삼성…“리더십 공백 장기화땐 사업 큰 타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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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선고 이후
前現경영인-애널리스트 진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서 삼성은 당분간 총수와 그룹 컨트롤타워가 모두 없는 초유의 길을 걷게 됐다. 동아일보는 향후 수년간 그룹과 계열사가 맞게 될 사업 환경 변화 및 이에 대응할 역량을 진단하기 위해 삼성의 사업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현직 전문경영인과 고위 관계자, 삼성 전문 애널리스트 15명의 의견을 27일 직접 들어봤다.

전문경영인들은 지금의 위기의식이 2008년 삼성 특검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했다. 당시에도 근무했던 A 씨는 “지금 삼성그룹은 비상체제라고 선언조차 못 하고 있는 상태”라며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댈지, 그리고 그걸 누가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문 경영인은 “사업 현안에 대해 상의할 대상이 없다”고 말했다.

사업 차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특히 그동안 ‘삼성’이라는 간판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큰 힘이 됐던 수주업이나 기업간거래(B2B) 사업은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1심 선고 직후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에 변화는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평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리더십의 불확실성은 삼성의 성공을 가져온 과감한 대규모 투자를 지연시킬 수 있고 다른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했다. S&P도 “법정 공방이 길어지면 삼성전자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뇌물죄가 확정될 경우 미국 반부패방지법 적용 대상이 돼 삼성 제품의 관공서 납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밖에서는 단기적으론 문제가 없다지만, 사장단은 당장 내년도 경영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도 고민인 분위기다. B 씨는 “올해 사업은 지난해 10월 보고해 그룹과 조율한 대로 마무리하면 되지만 내년 경영계획이 문제”라고 했다. C 씨 역시 “외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시스템의 삼성’이라며 리더십 공백이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인사 등 큰 결정 사안은 의사결정 주체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삼성은 국정 농단 여파로 지난해에도 정식 그룹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미 정체가 심한 상황에서 올해도 흐지부지되면 임직원 사기는 물론이고 퍼포먼스도 눈에 띄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마치 눈을 감고 길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위기의식이 담긴 발언도 나왔다.

경영자로서의 이 부회장 개인 브랜드에 의존해 오던 신사업 진출 및 인수합병(M&A)에도 차질이 생길 거란 목소리가 많았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오너들이 모이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가 대표적이다. 개인 회원 자격으로 참석하는 이 자리에 전문경영인의 대신 참석은 어렵다.
 

▼ “주주 이익환원 등 주요 의사결정 차질 빚을것” ▼

이종(異種) 산업의 M&A로 초성장 역량을 겨루는 ‘합종연횡 패러다임’ 시대에 경쟁력 저하를 피하긴 어렵다. D 씨는 “큰 계약은 선밸리처럼 캐주얼한 사교 자리에서 나온다”며 “이 부회장 개인 인맥이 당분간 끊긴다는 것은 이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의미”라고 우려했다. 삼성 금융계열사가 중국 금융·자원개발 관련 국영기업인 중신(中信·CITIC)그룹과 협력하는 과정에서도 중국 측은 이 부회장의 참석을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에 아직 이사회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 못한 상태에서 헤드쿼터가 사라졌다는 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E 씨는 “이 부회장 부재 시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면 된다는 얘기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미국의 GM이나 GE처럼 이미 이사회의 역할이 정착된 기업과 달리 아직 우리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삼성 전문 애널리스트들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제시했다. 삼성이 주주 이익환원이나 성장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재판 이전에 정해졌던 대로 반도체와 바이오를 두 축으로 투자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업의 주식가치를 올리려면 주주에게 꾸준히 이익환원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관련 의사결정은 느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해외투자자들은 주주환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삼성전자 전문 애널리스트는 “이재용의 부재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라며 “제아무리 삼성이 플랜B, 플랜C까지 마련해놨다고 가정하더라도 길어야 2, 3년짜리고 5년에 대한 로드맵은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이재용이 없다고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총수가 진행해 오던 투자 등 장기적 의사결정에는 영향이 있겠지만 단기적 사업 진행이나 계열사 매각 및 합병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의 지배구조 관련 결정에도 먹구름이 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병건 동부증권 기업분석팀장은 “계열사 간 지분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지주회사 전환 등 그룹 전반의 체제 변경을 위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은택·김재희 기자
#삼성#이재용#선고#리더십#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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