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9>생명체 도시, 죽이지 말고 살리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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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의 도시계획과 재개발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도시계획을 비롯해 일요판 신문이나 여성잡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또 행하고 있는 작금의 도시계획은 잘못되었다. 정반대의 도시계획을 나는 제안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서문 첫 문장부터 아주 도발적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이게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우리 도시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의심하고 고뇌하던 내게 단비처럼 반갑고, 죽비처럼 깨우침을 주었던 책이다. 1961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도시계획 분야를 요동치게 하고 주류 도시계획의 도도한 물길을 마침내 돌려놓은 책, 동서고금 도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이 컸던 책이다.

‘나쁜 피를 뽑아내야 병을 고친다고 믿던 지난 세기 사이비 의사들처럼 도시계획도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에 머물고 있다. 도시설계도 마찬가지다. 미신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 도시의 생생한 실상을 관찰하고 이해하지 않은 채 과도한 단순화와 상징화로 어찌 도시 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도시는 제대로 연구되지도 못하고 존중받지도 못한 채 희생양이 되고 있을 뿐이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제인은 도시를 물건이나 건물의 집합체가 아닌 유기체 또는 생명체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도시 문제는 사람들의 삶과 정치·경제, 역사와 문화, 환경과 생태까지 두루 얽힌 매우 복잡한 문제이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계획이란 미명하에 도시를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우리가 잊고 있던 도시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당연히 여기던 것들을 부정하고, 정반대의 역설을 말한다. 도시에 대한 익숙한 고정관념이 깨져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내 삶에 깊이 영향을 주는 도시. 도시는 행복의 조건일지 모른다. 도시가 행복해야 내 삶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길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안전해야 도시도 시민의 삶도 안전하다. 길은 또한 시민들이 만나 사귀고 소통하는 곳이다.” 제인은 이처럼 길을 중시하며 길을 살리는 도시계획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 도시들은 어떤가. 길은 자동차에 다 내주고 사람들을 건물 안으로 지하공간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닐까.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으로 용도를 분리하지 말고 섞으라. 거대한 슈퍼블록보다 작은 블록이 훨씬 더 도시를 좋게 한다. 도시에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어야 다양성도 커지고 활력도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 도시들은 어떤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지금 우리 도시를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발견해 보면 좋겠다. 도시를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아니 인격체로 본다면 잘 보일 것이다. 내 부모 같은 도시, 내 자녀 같은 도시, 나의 연인이나 배우자 같은 나의 도시는 지금 어떤가. 안녕한가?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생명체 도시#제인 제이콥스#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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