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장하성, 전경련과 척질 필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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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청와대조차 ‘옥에 티’라고 인정한 실언을 했다. 기자의 질문은 보유세 인상 여부였는데 대통령은 “부유세는…”이라고 운을 떼며 소득 재분배라는 거대한 이상과 연결지어 설명한 것이다.

이슈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넘어갔다. 장하성은 그 자리에서 바로 보유세를 잘못 발음한 것이라고 해명한 뒤 나중에 대통령에게 직접 실수를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내가 그렇게 말했나”라고 장하성에게 되물었다. 대통령은 두 세금의 차이를 의식도 못했을지 몰라도 장하성은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보유세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부자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부유세라는 세금은 개인의 재산변동액과 빚을 매년 파악한 뒤 1년 재산 증가분에 과세하는 항목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세금 혁명’이다. 현재 30%가량 숨어 있는 자영업자의 수입 내역이 드러나고 그 결과 서민 증세라는 엉뚱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부유세를 도입한 프랑스에서 ‘카르푸’가 벨기에로 떠난 것처럼 한국 부자도 반발할 것이다.


이번 ‘부유세 해프닝’과 지난달 대통령과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장하성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경제에서 세금과 일자리는 정부의 태도에 따라 국경을 넘나든다. 부유세 논란을 막으려는 노력이나 친기업 행보는 모두 진보 좌파정부라도 부자나 기업과 적이 될 생각이 없다는 손짓이다.

그런 장하성도 정경유착의 통로라는 오물을 덮어쓴 전국경제인연합회만은 어쩌지 못하고 있다. 정부 출범 100일이 넘도록 전경련에 대해 해체하라거나 개혁하라는 주문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 저울질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장하성은 자신을 ‘스탈린주의자, 노동계의 앞잡이’로 부르는 전경련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2000년대 초 참여연대에서 장하성이 소액주주 운동을 할 때부터 전경련과는 앙숙이었다. 3년 전 장하성은 전경련의 규제개혁 보고서를 모조리 분석해 기업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건의라고 비판했다. ‘초지(草地) 내 승마장 설치 제한 폐지나 회원제 골프장 소비세 면제 같은 건의가 기업 경쟁력과 무슨 상관인가?’라는 물음표가 전경련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한국자본주의’ 2014).

이런 비판은 전경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규제개혁의 물줄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릴 만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이 최근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다고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나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제거’를 예상하면 잘못 짚은 것이다. 정책을 주무르는 장하성의 머리에는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규제개혁이 곧 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보수의 공식’이 아예 없다.

그렇다고 장하성이 극단적 좌파는 아니다. 당국자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자본주의를 통해 사회적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고 포용을 추구하면서도 경쟁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 실용주의자다. 이런 사람은 사회가 발전하려면 사람과 자원을 잘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경련 난제를 풀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장하성은 전경련이 밉지만 표시 내지 않고, 그렇다고 용서하지도 않는 ‘입장 보류’ 상태다. 굳이 묵은 감정을 정리할 필요는 없다. 일자리 창출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전경련의 방대한 정보와 인력을 잘 조직해 넣으면 된다. 장하성이 시민운동가라면 경제단체와 끝까지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정책실장이기 때문에 적대적 관계 대신 동반자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전경련을 떠나는 직원도 국민이고, 전경련의 빈 사무실도 우리 자원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부유세 해프닝#전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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