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온 中학생들 “공부보다 아이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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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후배 되려 유학” 당당히 밝혀… 직장 그만두고 팬사이트 관리
연예인 상품 팔아 수익 챙기기도… 한류 새풍속… ‘사드’ 중재자 역할도

한국 생활 2년째인 중국인 치안(가명·24·여) 씨는 직장은 물론이고 흔한 어학당도 다니지 않는다. 상하이(上海)에 살던 치안 씨는 회사를 옮기며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덕질’ 때문이다. 덕질은 덕후질의 약자다.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마니아 활동을 일컫는다. 치안 씨는 온전히 덕질에만 전념하기 위해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아이돌 팬 사이트 관리자로 나섰다.

그의 일과는 아이돌 스케줄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소속사 홈페이지에 하루 종일 접속한다. 수시로 다른 팬에게 연락하며 아이돌의 스케줄을 정리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에 담아 중국의 팬을 대상으로 ‘아이돌 굿즈(아이돌 관련 상품)’를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아이돌 일정이 많으면 치안 씨의 손도 바빠진다. 그는 사진첩과 DVD, 달력, 지갑, 스티커 등을 만들어 중국 현지 팬에게 판매한다. 치안 씨는 “한국에 온 뒤 하고 싶은 걸 다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중국 젊은이 중 10, 20대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팬을 뜻하는 ‘한쥐미(韓劇迷)’로 성장했다. 대부분 중산층 가정의 외동딸이다. 만희(가명·23·여) 씨는 “한국에 가서 연예인 팬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도 크게 말리지 않았다”며 “엄마는 이참에 연예인 따라다니며 살도 빼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을 주선하는 중국 현지의 유학업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이돌그룹 EXO 멤버의 후배가 되자”는 글을 올리며 학생을 유치 중이다. 리인(가명·24·여) 씨처럼 중국 대학을 자퇴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다니는 한국 대학에 다시 입학한 사례도 있다.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에 재학 중인 중국인 펑진니(彭巾(니,이)·26·여) 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통해 한국 내 중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분석했다.

‘중국 한류 팬덤의 한국 이주와 초국적 활동’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공부와 직장 때문에 한국생활을 선택한 중국 젊은이들이 본업 대신 아이돌 팬 활동에 몰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치안 씨처럼 팬 활동을 경제활동으로 연결한 경우도 많다. 앨범이나 연예인이 광고한 상품을 한국에서 산 뒤 이를 중국 현지 팬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연예인이 해외로 떠나는 정보를 입수해 다른 팬들에게 팔기도 한다.

이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촉발된 한중 갈등 관계 속에서도 한국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다만 이들도 한국의 소속사나 아이돌이 중국 팬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펑 씨는 “중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연예인과 기획사가 중국 팬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진정성을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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