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버스 ‘안내문’ 오류투성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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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체를 쓰고’ ‘법규에 의거’ 등 우리말 놔두고 어려운 한자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구도 상당수
서울시 “교체시기 오면 순차 정비”

지하철 종로3가역의 공기호흡기 보관함. 안내문 3, 5단계에 쓰인 ‘면체’보다 ‘얼굴 부분’이나 ‘마스크’라는 익숙한 표현이 더 
이해하기 쉽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엘리베이터 사용안내문. ‘도어’는 ‘문’으로, ‘개폐’는 
‘여닫기’로 고쳐 쓸 수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지하철 종로3가역의 공기호흡기 보관함. 안내문 3, 5단계에 쓰인 ‘면체’보다 ‘얼굴 부분’이나 ‘마스크’라는 익숙한 표현이 더 이해하기 쉽다(위쪽 사진). 아래쪽 사진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엘리베이터 사용안내문. ‘도어’는 ‘문’으로, ‘개폐’는 ‘여닫기’로 고쳐 쓸 수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엄마, 면체(面體)가 뭐야?”

“음….”

24일 오후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에 설치된 공기호흡기함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딸(5)이 묻자 유모 씨(34)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용방법 안내문에는 ‘소방용품 보관함 문을 열’고 ‘공기호흡기를 메고 조인’ 뒤 ‘면체를 연결’하고 ‘용기밸브’를 열어 ‘면체를 쓰고 얼굴에 밀착’시켜서 ‘양압호흡으로 맞추고 OPEN시킨다’고 쓰여 있었다.

유 씨는 “우리말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성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면체를 한참 동안 검색한 끝에 유 씨는 딸에게 “공기통 말고 얼굴 부분을 말하는 거야”라고 대략 설명할 수 있었다.

서울의 대중교통 시설에는 이처럼 표현이 어색하거나 복잡한 안내문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교통부문 공공언어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검토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 용역조사를 수행한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의 양영채 사무총장과 함께 동아일보 취재진이 23, 24일 둘러본 서울 시내 지하철과 버스 안내문에는 여전히 오류가 빼곡했다. 공문서 등에 복잡한 행정용어 대신 이해하기 쉽고 정확한 국어를 사용하자며 2014년 제정한 ‘서울시 국어사용 조례’가 무색했다.

띄어쓰기 오류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은 어려운 한자 표현이었다. “관계법규에 의거 처벌됨”에서 ‘의거(依據)’는 ‘따라’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 ‘승하차 시’는 ‘타고 내릴 때’로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하절기’는 ‘여름철’, ‘전도(顚倒) 사고’는 ‘넘어짐’과 같은 뜻이다. 어색한 번역투 표현도 문제였다. 영어 ‘of’를 우리말 ‘의’로 그대로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10만 원의 과태료’는 ‘과태료 10만 원’으로 적는 것이 편하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많았다. 종로3가역의 엘리베이터 옆에는 ‘엘리베이터 이용 시 천천히 탑승하여 주시고 내부에서 전동휠체어 급출발은 출입문과 충돌하여 엘리베이터 고장 등 승객 갇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천천히 출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복잡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양 사무총장은 “‘승강기는 천천히 타세요. 승강기 안에서 전동휠체어를 급출발시키면 출입문과 부딪혀 승객이 갇히는 등의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로 고치면 훨씬 깔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인쇄된 안내문을 일일이 교체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교체 시기가 될 때마다 조금씩 고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24일 “실태조사 결과를 직원들끼리 공유해 인터넷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의 문장 오류는 자체적으로 바로잡고 있다”고 해명했다. 우리글진흥원 측은 “공공언어는 정확하면서도 세련되고 품위를 갖춘 모범 문장이어야 한다”며 기존 안내문을 전반적으로 정비하고 공공문장 사전 감수 시스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안내문#오류#지하철#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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