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中企 “맞춤형 인력 부족… 일감 포기할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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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산업協, 15개 장비업체 설문
“대학 졸업생들 이론으로만 무장… 2D 도면 이해 못해 실수 반복”
슈퍼호황 속 실무인력 못구해 발동동
4개 대학과 ‘전공트랙과정’ 개설

국내 중소 반도체 장비업체 A 대표는 이달 말 시작될 주요 대기업 공채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반도체 ‘슈퍼호황’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인력난으로 애태우고 있다지만 중소·중견업체들의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구직자의 역량과 기업의 요구가 서로 맞지 않는 ‘미스매치’ 현상도 두드러진다. A 씨는 “신입사원을 뽑아도 최소 6개월 이상은 실무교육을 시켜야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그럴 여유가 없다”며 “당장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인재가 시급하다”고 했다.

24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반도체 장비 및 설비 분야 인력 부족률은 5% 안팎으로 전체 반도체 산업 평균(1.8%)을 훨씬 뛰어넘었다. 최근 들어 반도체 업계 인력난 이슈가 이어지고, 지난달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가 됨에 따라 협회는 국내 15개 장비업체 30명의 관계자를 대상으로 심도 있는 설문을 진행했다.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설문조사엔 초호황 속 인력난에 시달리는 업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겼다.

우선 대기업 쏠림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한 회사가 적지 않았다. 한 회사는 “다들 대기업은 못 들어가 난리지만 중소기업은 일손이 없어 일을 못 하니 인력 수급 밸런스 조정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들어와도 근속연수가 3년 수준에 그쳐 고민이 많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오려는 학생이 없으니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포기하거나 주문을 받고도 일손이 모자라 다른 회사에 일감을 넘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설명했다.

막상 뽑더라도 현장에 바로 투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불만도 많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 간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한 회사는 “반도체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요즘 졸업생은 이론으로만 무장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근 학교에서 3차원(3D) 도면 위주로 가르치다 보니 정작 가장 기본적인 2D 도면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실수가 반복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불만도 있었다. 한 업체는 “전류가 어느 정도 흐르므로 어떤 케이블을 써야 한다는 등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기초교육도 못 받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업체들은 “입사 후 교육을 시킬 여유가 없을뿐더러 교육시켜 놓으면 다른 경쟁사 또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잦아 교육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한 회사는 “분야별 실습을 통해 학교에서 업무를 사전 경험하고 오면 좋겠다”고 했고 또 다른 회사는 “3학년 이후부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과정을 분리해 실무 개발 위주의 교과목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4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수렴된 업계 목소리를 토대로 산업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맞춤형 인력을 키워 내기로 하고 명지대 한국산업기술대 인하대 대림대 등 4개 대학과 2학기부터 반도체 장비 특화 인력 배출을 위한 ‘반도체 장비 전공트랙과정’을 시행하기로 했다. 과정을 이수한 100여 명의 학부 졸업생이 내년에 처음 배출된다. 협회는 향후 5년 내에 이 같은 방식으로 500명 이상의 장비인력을 키울 수 있도록 참여 대학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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