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음료를 비우고 버려 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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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젊은이 홍대앞 ‘저음비버’ 캠페인
‘먹다버린 음료’ 뉴스 보고 시작… 페트병 깔때기로 액체 분리수거

22일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출구에서 윤수미 씨가 쓰레기통 옆에 설치된 ‘깔때기’에 먹다 남은 음료를 쏟아붓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출구에서 윤수미 씨가 쓰레기통 옆에 설치된 ‘깔때기’에 먹다 남은 음료를 쏟아붓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한 쓰레기통 옆면에 독특한 ‘깔때기’가 붙어 있었다. 페트병을 잘라 안에 거름망을 끼우고 아래에 호스를 연결해 근처 하수구로 연결해 놓은 것이다. 지나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마시고 남은 음료를 깔때기에 부은 뒤 남은 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홍대입구역의 깔때기는 바로 ‘저음비버’ 캠페인의 결과다. 저음비버는 ‘저에게 음료를 비우고 버려 주세요’라는 뜻이다. 최인철 씨(35)를 비롯해 강성진(30) 윤수미 씨(26) 등 세 명의 젊은이가 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광고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세 사람은 2012년부터 공익캠페인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캠페인도 거리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테이크아웃 음료가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뉴스를 세 사람이 카카오톡으로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버려지는 페트병을 활용해 액체를 분리수거하기로 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구한다’는 생각이 반영됐다. 페트병 외의 모든 재료는 저가 생활용품점에서 구했다. 제작비용은 개당 6000원. 유동인구가 많은 홍익대 입구의 쓰레기통 네 곳에 접착식 걸이를 붙여 13일 오후 설치했다. ‘음료롤 비워 달라’는 내용의 간단한 팻말도 부착했다. 광고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강 씨의 후배들이 있는 대구에서도 동시에 진행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이물질을 많이 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캠페인은 기대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환경미화원들은 페트병이 기울어져 있으면 위치를 바로잡거나 망에 걸러진 이물질을 제거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설치 자체가 법적으로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며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문제점도 있다. 밤낮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깔때기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담배꽁초 등으로 막히거나 액체가 주위로 흐르면 오히려 시민들이 더 불편을 겪을 수 있다”며 “정식으로 도입하려면 관리·설치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세 사람은 “시민들이 ‘저음비버’를 보면서 자신이 무심코 버리는 음료수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인식한다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최 씨는 “우리처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누구나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도록 서울시 차원에서 ‘공공디자인 시범거리’를 조성하면 좋겠다”며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정책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저음비버#캠페인#음료#분리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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