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실손보험’ 도입 압박에 보험업계 속앓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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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유병자-은퇴자 보험’ 논의… 건보 강화로 기존 보험료도 내릴 판
업계 “헬스케어 서비스 허용 등 수익성 개선할 유인책 내놔야”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면서 보험회사들이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정부 방침대로 유병자·은퇴자 대상 실손보험이 도입되면 손해율이 높아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높은 보험료 부담에 가입자가 적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해 ‘보험 사각지대’ 해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기존 실손보험의 보험료도 인하 압박을 받게 된다.

○ 보장 범위, 보험료 책정도 난관

23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초부터 유병자 및 은퇴자 실손보험 출시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상품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유병자·은퇴자 실손보험을 통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정부 당국의 기조가 확고하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느끼는 압박도 크다.

보험사들이 우려하는 것은 유병자 실손보험의 높은 손해율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은 134.9%에 이른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다. 고령자나 질환이 있는 가입자는 언제든지 자주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험금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유병자의 범위와 보장 수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TF에서도 질환 정도에 따른 보장 범위를 놓고 의견 조율이 잘 안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보험료 책정도 난관이 예상된다. 보험료는 2015년부터 자율화됐지만 정부가 보험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보험료 인하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도입된 ‘노후실손의료보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맞춤형으로 출시된 상품이지만 올 상반기(1∼6월)까지 누적 가입자는 3만 명에도 못 미쳤고 보험사의 손해율은 140%에 달했다. 가입자는 자기부담비율이 높아 가입을 꺼렸고 보험사도 손실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노후실손보험 사례를 보면 보험업계가 고위험군 보험 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공공성 확대와 보험료 인하만 압박할 뿐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인책은 제시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헬스케어 서비스 육성이 대표적이다. 보험사가 가입자의 건강 유지에 적극 나서 의료비 지출을 사전에 줄여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외국에선 보험사가 자회사 형태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장기 간병, 요양시설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비(非)의료기관의 헬스케어 서비스는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드시 의료인이 행해야 할 의료행위와 비의료인도 가능한 건강관리 영역을 구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보험업계 “실손보험 여전히 필요”

다만 정부의 건강·실손보험 제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민간 보험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커지더라도 여전히 의료비 전체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실손보험의 역할은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삼성생명 측은 “치매 등 중증질환의 경우 간병비와 생활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암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정액 건강보험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건강보험 급여화가 진행되면 실손보험 손해율이 개선되기 때문에 가입자들에겐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87%에 달하지만 민영 건강보험 시장의 계약은 2000년 이후 연평균 6.3%씩 증가하고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실손보험#보험업계#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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