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 어보 전시장서 치워라”…항의 시달리는 고궁박물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모조품 논란’에 시민단체 진정서
“재제작품… 유물 가치 충분” 박물관측 ‘계속 전시’ 입장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에서 모조품 의혹을 받고 있는 덕종 어보.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에서 모조품 의혹을 받고 있는 덕종 어보.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국립고궁박물관이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 모조품 논란이 제기된 덕종 어보를 포함해 전시를 진행하자 반발이 일고 있다.

성종이 죽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471년 만든 덕종 어보는 도난 사건으로 1924년 새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부 시민들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을 어떻게 전시할 수 있냐’며 박물관에 항의 전화를 걸어 왔고, 시민단체는 덕종 어보를 철거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 측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시는 그대로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져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오후 찾은 국립고궁박물관. 문제의 덕종 어보는 1층 기획전시실 안쪽 공간에 전시돼 있었다. 어보의 좌측에는 환수 당시 영상, 우측에는 분실 당시 내용을 보도한 신문 기사가 함께 전시됐다. ‘순종이 어보 분실을 염려해 경찰서장을 불러 조사를 촉구했다’(동아일보)는 것과 ‘어보를 재제작해 정식으로 종묘에 위안제를 지내고 봉안했다’(매일신보)는 내용 등이다. 안내판에는 ‘1924년 종묘에서 도난을 당한 후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다시 만들었다’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이날 관람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규 해설은 문정왕후 어보, 현종 어보 등 다른 전시품들은 모두 설명했지만 덕종 어보는 언급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한 모습이었다. 자녀와 전시장을 찾은 이모 씨(42·여)는 “덕종 어보만 그냥 지나쳐서 의아했는데 이미 전시되고 있는 것이라면 논란도 함께 설명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날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덕종 어보를 전시에서 철거해 달라는 진정서를 박물관에 제출했다. 진정서는 “조선총독부 산하 이왕직(李王職)에서 1924년 제작한 모조품을 한미 외교의 성과로 돌아온 진품 어보와 함께 전시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전시의 의미가 빛날 수 있도록 모조품을 즉각 철거해 달라”는 취지다.

박물관 측은 시민들의 반발에 난색을 표하면서도 덕종 어보의 가치를 온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어보를 모조품이 아니라 순종의 지시로 이왕직이 의뢰해 제작하고 종묘에 정식으로 봉안한 ‘재제작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종묘에는 어보를 처음 올린 연대만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제작을 하더라도 원본의 가치를 지닌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재계에서는 반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왕직의 예식과장이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라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 게다가 조선 왕실 차원의 제작과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의 작업을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다. 당시 어보를 제작한 조선미술품제작소는 1920년대 일제 취향에 따라 작업했다.

앞서 문화재위원회는 국권을 상실한 1910년 이후 유물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2월 덕종 어보를 지정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