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인찬]北 억류자 누구인지 모른채 구명한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황인찬 정치부 기자
황인찬 정치부 기자
“억류된 첫날부터 풀려날 때까지 혼자서 2757끼를 먹었다.”

북한에 2년 반 동안 억류됐다가 풀려난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는 13일 이렇게 밝혔다.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외로움 속에 매 끼니가 생쌀을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버텨냈고 결국 자유를 얻었다.

임 목사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아직 북한엔 한국인 6명, 미국인 3명이 억류돼 있다. 가장 오래 억류되어 있는 김정욱 선교사는 2013년 10월부터 3년 10개월째다. 나머지 사람들도 억류 기간이 최소 1년이 넘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6월 풀려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임 목사 석방을 위해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북한과 물밑 접촉을 했다.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은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미국, 캐나다, 호주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면서 이 국가들의 영사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대북 채널이 끊긴 우리 정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에 외교 채널을 갖고 있는 나라들을 통해 억류자 석방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국제기구를 통해 억류자와의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억류자의 접견이 성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억류자들의 건강상태는 물론이고 생사조차 정부가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다.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억류자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에 있다. 하지만 이젠 정부도 북한 억류자 관련 정책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취재를 하면서 정부 기관의 엇박자를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현재 억류자에 대한 정보 파악은 국가정보원이, 국가 간 외교 채널을 통한 접촉 시도는 외교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협조는 통일부가 제각각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신원이 공개된 한국인 억류자 5명 외에 나머지 1명에 대한 정보는 국정원이 다른 부처와 공유하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다른 부처들은 억류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구명 활동을 펴고 있는 셈이다.

답답한 나머지 기자가 억류자와 관련해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접촉을 시도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관련 부처들의 설명도 제각각이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없다”고 했는데 하루 뒤 외교부 담당자는 이와 다른 설명을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공관을 통한 영사 접견 요구가 어려운 것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정부가 억류자 구명과 관련해 부처 간 상시 협의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억류자와 관련된 작은 정보라도 긴밀히 공유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자국민을 보호하는 게 헌법상 의무인 정부가 해야 할 책무다.

정부는 억류자 가족에 대해서도 세심한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남한에 있는 가족들은 북에 있는 아빠, 남편에게 해가 갈까 봐 대외적으로 언급도 꺼리며 냉가슴을 앓고 있다.

지난해 말 통일부 차관이 억류자 가족을 만난 데 이어 올 추석엔 청와대가 억류자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의 선물을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이나 국무총리, 더 나아가 대통령이 이들 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정부가 반드시 석방시키겠다는 의지를 설명한다면 더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
#임현수#북한 억류#북한 외교 채널#억류자 석방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