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로 음악 따로… ‘하루키스럽지 못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사단장…’속 돈 조반니 등
전작들과 달리 어색하게 겉돌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음악과 분리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출세작 제목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음반 ‘러버 소울’(1964년) 수록곡이다. 첫 소설을 발표하기 전까지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하루키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의 대담집, 재즈 에세이, 평론집 등 음악 관련 글을 꾸준히 써 왔다.

8년 전에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소설 ‘1Q84’ 테마곡으로 쓰여 상당 기간 음반판매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달 국내 번역 출간돼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는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는 제목부터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사진)를 끌어왔다.

오페라 1막에서 바람둥이 돈 조반니는 한 여인을 희롱한 뒤 그녀의 아버지 기사단장을 살해한다. 하루키는 이 장면을 소설의 주요 소재인 늙은 화가의 그림, 절정부의 ‘이데아 살해 장면’에 거의 베껴 옮기듯 활용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재즈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멍크의 음반도 주요 장면에 삽입됐다.

‘기사단장 죽이기’ 삽입곡 전문가 추천 음반
‘기사단장 죽이기’ 삽입곡 전문가 추천 음반
하지만 이번 소설 속 음악 활용에 대해서는 전작에 비해 부정적 의견이 적잖다. ‘이야기와 유의미하게 맞물리지 못한 채 어색하게 헛돈다’는 것. 음악칼럼니스트 류태형 씨는 “책 제목을 보고 ‘돈 조반니’를 플롯 골조로 쓰겠거니 예상했는데, 읽고 나니 늙은 화가가 오스트리아 유학을 다녀온 사연 말고는 음악과 이야기의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배경 공간의 분위기를 전하는 향신료 정도로만 음악을 썼을 뿐 ‘1Q84’에서처럼 소설 속 두 세계를 연결하는 필연적 요소로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류 씨는 “음악이 이야기 전반의 풍취를 잡아준 ‘해변의 카프카’나 재즈 트럼본 연주자 커티스 풀러의 곡을 뼈대로 쓴 ‘애프터 다크’와 달리 이번 소설은 굳이 음악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하루키가 전부터 음악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글의 맥락과 잇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는 의견도 있다. 한 클래식음악 전문가는 “장식이 아니라 제목에 쓸 정도로 돈 조반니를 언급했다면 ‘장미의 기사’보다는 같은 바람둥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2악장을 가져왔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했다.

음악의 흐름과 이야기 흐름을 교차시키는 쾌감은 전보다 떨어지지만 성실하게 쌓아온 음악 경험을 글에 녹이는 하루키의 내공을 폄훼할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 씨는 “사건과 상황에 맞게 음악을 활용한 것인지 의구심 드는 부분이 있지만, 그 어울림의 판단은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읽어본 뒤 독자 각자가 해보길 권한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